지난 1월5일부터 7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가스에서 세계 최대 규모 기술 박람회인 CES가 열렸다. 기자는 ‘CES 2022’를 현지 취재하며 첫째 과학기술 혁신 흐름, 둘째 미·중 등 글로벌 과학기술 패권전쟁, 셋째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봤다. CES 취재 단상을 정리해본다.
업종 간 경계 완전히 사라져…과학기술 초연결·초융합
먼저 과학기술 혁신 흐름에서 보면 업종 간 기술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는 초연결·초융합의 가속화 현상을 느낄 수 있었다.
인공지능(AI), IoT(사물인터넷), 5G·6G,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기술 등을 결합해 메타버스를 활용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공연, 쇼핑, 영화를 즐기거나 로봇 등에게 일을 시키는 식이다. 내 아바타가 온라인에서 살게 되는 세상이 되는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 회장은 이번 CES에 사람과 로봇, 메타버스로 연결되는 메타모빌리티 개념을 들고 나왔다. 자율주행차 안에서 메타버스에 접속해 회의도 하고 집에 있는 로봇에다가 청소도 하고 애견·애묘 사료를 주라고도 지시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롯데는 온·오프라인 융합 실감형 메타버스 플랫폼을 선보였다. 앞으로 인천공항에서 UAM(도심항공교통)을 타고 한강변 수직 이착륙시설에 내려 자율주행셔틀로 갈아타는 구상을 하고 있다. 삼성은 AI 아바타가 비서 로봇이나 가사 보조 로봇에게 일을 시키는 미래상을 보여줬다. 글로벌 가전사들과 IoT 표준 플랫폼을 만들어 가정에서 여러 브랜드의 IT기기를 제어하겠다는 계획도 피력했다. 삼성은 운전석 디스플레이에 각종 운전정보를 AR로 표출하는 자동차도 내놓았다. 보행자를 알려주고 횡단보도를 입체감 있게 표현하는 식이다.
이번 CES에서는 메타버스에 현실과 같은 디지털트윈을 구축하고 로봇 등 기기와 장비를 연결해 관리함으로써 스마트시티와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하는 단초를 보여줬다.
업종 파괴, 이업종 융합을 조금 더 살펴보면 일본 소니는 세단과 SUV 전기차 모델을 내놓고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촬영용 드론과 인공위성 카메라도 전시했다. 애플도 전기차를 3년 뒤 내놓기로 했다. 삼성과 LG도 마음만 먹으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데 왜 안할까 궁금했다. 삼성, LG가 SK와 함께 2차전지 배터리를 하는데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 기존 자동차사들을 경쟁자로 돌리게 되는 문제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우여곡절 끝에 부산에 자동차공장을 지었다가 IMF 사태로 두손을 든적이 있는데 이건희 회장이라면 다시 진출할까 하는 단상이 스쳤다.
이번 CES에서는 운전자 개입이 전혀 없는 레벨4 단계의 미국 투심플 자율주행 트럭도 전시됐다. 이 트럭은 작년 말 애리조나주에서 128km 자율주행에 성공했다. 미국은 현재 50개 중 8개주에서 트럭 자율주행을 금지하고 있으나 장차 트러커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된 셈이다. GM은 전기차 픽업 트럭을 소개했는데 3년 내 픽업트럭 로봇 배송 서비스를 하고 자율주행차, 에어 택시도 선보이기로 했다.
자동차에다가 전기잉크를 함유해 전기자극에 따라 색상을 바꿀 수 있는 기술도 BMW에서 선보였다. 차 색깔을 달리해서 쓰며 새 차 느낌을 내는 것이다. 모빌리티 전시장을 둘러보니 차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일부 설치한 전기차도 눈에 띄었다. 낮에는 태양광 발전, 저녁이나 흐린 날에는 배터리를 전기원으로 쓰기 위해서다. 다만 현재 태양광 전환효율이 최고 25% 정도인데 35%까지 높여야 하는 과제가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 3월 처음으로 자율운행 대형선박의 대양 횡단 계획을 밝히는 등 자율주행은 선박, 기차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람과 기계의 융합, 즉 휴머노이드 로봇의 진화도 눈길을 끌었다. 영국의 엔지니어드 아츠가 만든 ‘아메카’라는 이 로봇은 가격이 25만달러인데, 제 자리에서 눈썹과 눈꺼풀을 들어 올리거나 내리고 눈을 깜빡이는 등 여러 얼굴 표정을 짓고 손으로 제스처를 취하고 상체 방향을 바꿔가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아메카에게 “인간과 대화하는 것을 즐기느냐”고 묻자 “인간과 대화를 즐기냐고요? 그래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메타버스와 함께 요즘 화두로 떠오른 NFT(대체불가능한 토큰)도 이번 CES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였다. 가수 겸 배우인 패리스 힐튼은 NFT와 암호화폐 투자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미술품이나 공연 등을 NFT로 만들어 수십억원, 심지어 수백억원에 팔리기도 하는 현실에서 확고한 미래 트렌드가 될지 17세기 초 네덜란드 튤립투기 파동처럼 될지 논란이 있으나 미래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쪽이 우세하다.
CES에서 올해 처음 신설된 우주관에서는 재활용 자율주행 우주 왕복선인 ‘드림체이서’가 전시됐는데 내년 초 6톤 화물에 10여명의 승객을 싣고 15~30회 재사용하는 데 도전할 방침이다. 김덕수 한양대 교수는 위성 충돌 회피 방지 등의 혁신 소프트웨어 기술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우주는 미래 성장동력과 튼튼한 국방,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첩경이다. 서울경제는 올해까지 4년 연속으로 국제우주포럼을 여는데 오는 6월15~16일 개최할 예정이라 이번 우주관에 관심이 컸다.
역시 올해 처음 만들어진 푸드테크관에서는 다양한 대체육·배양육이라든지 음식과 기술의 최신 융합을 볼 수 있었다. 온라인으로 치러진 지난해 CES에서는 바이오밀크라는 인공 모유 제품이 소개되기도 했는데 실리콘밸리에서는 오래전부터 푸드테크쪽에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이번 CES는 친환경도 주요 테마였다. 전기차뿐 아니라 탄소배출 저감 전기 스노바이크나 수소 레이싱카도 볼 수 있었다. 삼성은 3년 내 전 제품에 재활용 소재를 쓴다는 에코경영을 선언했다. SK이노베이션은 경영진이 CES 전략회의를 열고 카본투그린이라는 탄소중립을 다짐했다. 일본 파나소닉도 그린임팩트 캠페인을 소개했다. 중국 TV제조사인 하이센스는 환경친화적 디스플레이를 내놨다. 현재 EU와 미국이 주도하는 탄소국경세 등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EU는 내년부터 전기·시멘트·비료·철강·알루미늄 등 탄소배출이 많은 품목에 탄소국경세를 시범 시행한 뒤 2025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철강 등 국내의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무역장벽이 될 것으로 우려한다.
이번 CES에서는 헬스케어에서 채혈없이 센서로 혈당을 확인하거나 소변 검사 2분만에 신장 자가진단 기술이라든지 혁신 기술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원격의료는 언제쯤 시행할 수 있을지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애보트사는 15분만에 코로나 검사결과를 알 수 있는 진단키트를 무료로 나눠줬는데 혼자 하려니 좀 헷갈렸다.
미·중 과학기술 패권전쟁 가속화…우리의 선택은?
두번째로 기자는 미·중 과학기술 패권전쟁 측면에서 CES를 봤다. CES는 세계 최대 기술 전시회답게 이번에 10억달러를 들여 웨스트관을 하나 더 개장해 예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하지만 미중 패권전쟁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중국업체가 대폭 줄며 오프라인으로 행사를 한 재작년(약 4,500개사)에 비해 절반 수준(약 2,200개사)으로 급감했다. 중국은 2020년 1,200개가 참가했으나 이번에 170여개에 그쳤고 요즘은 유럽쪽 전시회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은 1,300개, 한국 500여개, 프랑스 279여개, 대만 140여개였다. 중국 기업뿐 아니라 아마존, 메타, 트위터, 아마존 등이 불참하며 전시면적은 재작년보다 4분의 1정도로 축소됐다. 행사도 당초 나흘에서 하루 줄었다. 주요 기업 CEO들이 비전을 발표하는 컨퍼런스도 그만큼 줄었다. 작년 ‘CES 2021’은 온라인으로 열렸다.
서울경제는 미중 과학기술 패권전쟁의 와중에 성장엔진을 다시 켜 국가의 생존을 담보하고 G5(주요 5개국)로 도약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서경 CES 과학기술 포럼’을 개최했다. 1부는 실리콘밸리의 혁신 생태계, 2부는 미국 대학의 기업가정신과 기술사업화에 관해 현지 기업인과 교수 등 4명이 발제하고 한국의 산학연정 전문가 5명이 패널로 참여했다.
현재 미국은 정권을 떠나 인공지능(AI)·바이오·5G·양자기술 등 중국의 ‘기술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첨단 기업에 경제 제재를 가하고 글로벌 공급망 배제에 나서고 있다. 양국 간 연구개발(R&D) 교류에도 제동을 걸고 있다. “중국이 10년 내 AI·5G·양자정보과학·반도체·바이오·그린에너지 등에서 미국을 따라잡을 것”(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벨퍼센터)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5월 10일 출범하는 차기 정권에서 G5로 도약하는 토대를 만들고 통일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강력한 과학기술력을 갖추는 게 숙제다. 이번에 CES에서 대기업은 물론 벤처기업 등 한국 기업들이 혁신상을 대거 휩쓸었지만 다소 스마트 기기에 편중돼 AI, 로봇, 친환경 등 신산업 분야에서 수상 실적은 부진했다. 차기 대통령은 과학기술 중심 국정운영을 하고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파괴적 혁신을 꾀해야 한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세계 주요 혁신 클러스터에 과학기술 대사를 두되 과학기술을 경제-안보와 패키지로 다뤄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을 할 때는 실리콘밸리에 들러 글로벌 혁신 기업인들과 윈윈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당초 예상보다 오래 지속…그 끝은 엔데믹
셋째는 코로나 팬데믹 관점에서 CES를 봤다. 기자는 CES에 갈 때는 라스베이가스 직항 전세기를 타고 갔는데 인천공항이나 라스베이가스공항이나 너무 사람이 없어 팬데믹이 절로 느껴졌다. 매스컴에서 접했던 것보다 미국 사람들은 코로나에 대해 무감각할 정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겁이 날 정도였다. 코로나를 독감이나 감기 정도로 취급했다. 식당, 공연장, 카지노, 공항 등에서 QR체크를 안 하는 것은 물론 마스크를 안 쓰는 사람도 많았다. 마스크를 쓰더라도 KF94같은 N95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덴탈마스크나 면마스크, 천을 대충 쓰는 수준이었다. 개인의 자유가 우선인 나라라고 해도 좀 심했다. 이러니 코로나가 오래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재작년 초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을 때 제가 팬데믹이 3년 정도 가고 이후 풍토병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보도를 여러번 했었는데 풍토병이 되기까지 팬데믹이 더 오래 가지 않을까 염려가 됐다. 우리나라 CES 참가자들도 기업인 등 200~300명은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기자가 CES에 가기 전에 회사에다가 ‘종군기자로 코로나 전쟁터와 과학기술 혁신전쟁터를 취재간다’고 농담식으로 얘기했는데 다행히 이번에 8명의 서경 취재팀 모두 무사했다. 기자도 출국 전부터 시작해 에어비앤비에서 10일간 격리해제한뒤 집에 가기까지 총 6번 검사해 모두 음성을 받았다. 정부가 자가격리 기간을 1주일로 줄인다고 하는데 빨리 해야 한다. 10일은 너무 답답하다.
“Unlocking the Possibility of You(당신의 잠재력을 일깨워라).” CES에서 눈에 띈 현수막 글귀다. 차기 지도자가 대한민국을 기회의 땅으로 만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