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한국의 슈바이처 된 ‘철퍽이’… “돈 없어 죽는 일은 없어야죠”

27년 의료 봉사 박철성 로즈클럽인터내셔널 사무총장

어릴 적 소아마비 수술로 고쳐준

외국인 선교사 길 따르자 결심

필리핀·네팔 등지서 인술 나서

범죄자 오해로 구치소 생활도

"봉사는 주는 것 아닌 함께 하는 것

노인 짐 들기 등 쉬운 일부터 하길"

박철성 로즈클럽인터내셔널 사무총장박철성 로즈클럽인터내셔널 사무총장




소아마비가 왔다. 가난 탓에 병원은 근처에도 못 갔다. 외국인 선교사에게 무료 수술을 받았지만 여전히 다리를 절었다. 또래 아이들에게 ‘철퍽이’라고 놀림을 받기 다반사. 50년이 지났다. 지금은 누구도 놀리지 않는다. 별명도 바뀌었다. 철퍽이에서 ‘한국에서 온 슈바이처’로.



가정의학과 의사인 박철성(61) 로즈클럽인터내셔널 사무총장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알려진 의사다. 지난 2003년에는 필리핀, 2010년에는 네팔에서 취약 계층 노인과 아이들 등을 대상으로 인술을 펴 왔다. 해외에 나가기 전에는 국내에서 의료봉사를 했다. 그가 인술을 베푼 기간은 무려 27년. 행정안전부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해 최근 국민추천포상 국민훈장을 수여했다.

박 사무총장이 처음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자신이 겪었던 소아마비였지만 국내에서 환자가 거의 사라지면서 뇌전증으로 대상을 바꿨다. 가장 많을 때는 14만 명에게 도움도 준 적도 있다. 이유는 하나. ‘가난하다고 목숨을 버리게 할 수는 없다.’

“모두가 다 행복할 수는 없죠. 문제는 건강할 권리가 너무 소수에게 집중돼 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경제적으로 어려워 병원을 가지 못하고 죽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울 부암동 사무실에서 만난 박 사무총장의 첫마디다.



그가 해외 의료봉사에 나선 것은 자신을 치료해 준 외국인 선교사 스탠리 토플 박사 때문이다. 토플 박사는 1965년부터 1978년까지 13년간 국내 한센병 환자들에게 인술을 베푼 것으로 유명하다. 이 공로로 2018년에는 석천나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 사무총장은 “이분이 왜 이런 일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며 “의사가 된 것은 그 해답을 찾기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수술을 받고 마음의 빚을 진 그는 토플 박사를 찾았지만 이미 또 다른 인술을 위해 케냐로 떠난 후였다. 그 순간 ‘나도 더 어렵고 더 가난한 곳을 찾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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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성 의사가 필리핀 아이따족 원주민들을 진료하고 있다.박철성 의사가 필리핀 아이따족 원주민들을 진료하고 있다.


무작정 가족을 모두 데리고 필리핀으로 날아가 개업을 했다. 의료 장비와 약품도 자비로 충당했다. 고생도 많았다. 필리핀에서는 범죄자로 오인돼 철창에 갇히기도 했고 네팔에서는 너무 추워 집안에 텐트를 치고 침낭 속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오래 견디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좀 달라’며 한 로즈클럽에 합류한 이유다. 생각도 바뀌었다. 그는 “처음에는 열심히 환자를 보고 약을 주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 한국 자원봉사자들이 떠나고 나서도 환자를 지속적으로 돌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지금은 병원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재정 안정을 강화하는 설계자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네팔친선병원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다.

의사인 박철성 로즈클럽인터내셔널 사무총장 겸 의사가 진료를 기다리는 네팔 다낭학교 학생들과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의사인 박철성 로즈클럽인터내셔널 사무총장 겸 의사가 진료를 기다리는 네팔 다낭학교 학생들과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의료봉사를 할 때는 철칙이 있다. ‘두 손으로 주는 지원’이 바로 그것이다. 봉사는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원을 해도 동료라고 생각하고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받는 사람이 상처를 입게 된다”며 “우리가 네팔을 떠날 때 전 직원들이 눈물을 흘린 것도 동등한 관계에서 지원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지금과 같이 발전한 데는 경제적 요인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루 수천 명의 환자들을 돌본 것처럼 수많은 이들의 남을 위한 헌신들이 쌓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신구 세대 간 단절이 이러한 봉사 DNA를 희석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 사무총장은 “우리가 어렸을 때의 경험을 지금의 젊은이들과 협력하면 더 나은 미래의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면 굉장히 멋있는 일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전했다.

코로나19를 극복하는 힘도 봉사에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어렵지 않다. 노인이 든 짐을 한번 같이 들어 준다든가 밥 못 먹는 이들에게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박 사무총장은 “봉사는 특수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쉬운 일부터 실천하다 보면 그것이 나를 깨우쳐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코로나 블루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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