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서울아산병원, 폐이식 수술 200례 달성…말기 폐부전 환자에게 새 삶 선사

특발성폐섬유증 등으로 기계적 환기장치 없이 숨쉬기 어려운 환자 대상

가습기살균제 부작용·코로나19 합병증 환자도 치료…생체폐이식도 성공

다학제 진료로 중환자 집중 관리… 폐이식 환자 3명 중 2명 5년 이상 생존


#김 모씨(54·여)는 어느 날부터 마른 기침이 사라지지 않고 가슴까지 답답해져 병원을 찾았다가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았다. 설상가상 심각한 폐동맥고혈압까지 찾아왔다. 심장에서 폐로 혈액을 공급하는 폐동맥의 혈압이 높아지며 숨 쉬기가 더욱 힘들어졌고 심장까지도 멈출 수 있는 위기에 다다른 것이다. 김 씨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폐이식뿐이었다. 김 씨는 곧바로 이식 대기자로 등록했다. 간절한 기다림 끝에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로부터 1순위 선정 연락을 받고, 올해 1월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 김동관 흉부외과 교수에게 뇌사자 폐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김 씨는 현재 큰 합병증 없이 안정적으로 회복하면서 꾸준히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폐이식팀은 폐동맥고혈압을 동반한 간질성 폐질환으로 심각한 호흡곤란을 겪던 50대 여성 환자에게 뇌사자의 폐를 성공적으로 이식하며 폐이식 수술 200례를 달성했다고 17일 밝혔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폐이식팀 김동관 교수(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 1월 13일 간질성 폐질환 환자에게 200번째 폐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폐이식팀 김동관 교수(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 1월 13일 간질성 폐질환 환자에게 200번째 폐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폐이식은 산소보조나 인공호흡기 등 기계적 환기장치 없이는 숨쉬기 어려운 말기 폐부전 환자들을 살리기 위한 수술이다.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은 2008년 특발성폐섬유증 환자에게 뇌사자의 폐를 이식한 것을 시작으로 말기 폐부전 환자들의 장기 생존과 삶의 질 보장에 앞장서왔다. 2019년부터는 매년 30건 이상의 수술을 시행 중이다. 누계 수술 200건 중 뇌사자 폐이식이 199건, 생체 폐이식이 1건이다. 국내 폐이식 환자 4명 중 1명의 폐이식 수술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폐이식 환자 200명 중 남성은 127명, 여성은 73명으로 남성이 월등히 많았다. 연령별로는 60대가 64명으로 전체의 32%를 차지했고, 50대(49명)·40대(29명)·30대(20명)·10대(18명)·10세 미만(10명) 순이었다.



원인 질환으로는 폐가 딱딱해지면서 폐 기능을 상실해 사망까지 이를 수 있는 특발성폐섬유증이 가장 많았다. 그 밖에도 폐쇄세기관지염, 급성호흡곤란증후군, 간질성 폐질환, 중증 폐렴, 만성폐쇄성폐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폐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 중에는 가습기 살균제 부작용으로 심각한 폐 손상을 입은 환자 13명과 코로나19 감염 후유증으로 폐기능을 상실한 환자 10명도 포함됐다. 코로나19에 감염돼 폐이식을 받은 환자 중에는 지구 반대편 멕시코에 사는 50대 교민도 있었다. 심각한 폐섬유증을 앓던 환자는 기계장치에 목숨을 의존한 채 에어엠뷸런스를 타고 서울아산병원에 이송됐고 2020년 9월 폐이식 수술을 받아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2017년에는 특발성폐고혈압으로 심장이 언제 멈출지 모르는 스무 살 환자가 부모의 폐 일부를 성공적으로 이식받으며 건강을 되찾은 사례도 있었다. 국내 최초로 시행된 생체폐이식 수술이 성공을 거두면서 살아있는 사람의 폐를 이식받을 수 있게 하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으로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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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의 이식 후 생존율은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200명의 폐이식 환자 중 약 70%는 인공심폐기(에크모)나 기계적 환기장치를 오래 유지한 중증 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1년 생존율 80% △3년 생존율 71% △5년 생존율 68% △7년 생존율 60%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유수 폐이식센터들의 성적을 합한 국제심폐이식학회(ISHLT)의 △1년 생존율 85% △3년 생존율 67% △5년 생존율 61%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국내 폐이식 성적을 모두 모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의 △1년 생존율 63% △3년 생존율 53.4% △5년 생존율 47.9% △7년 생존율 43.9%와 비교해도 우수하다.

폐이식 생존율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배경은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의 독보적인 유기적인 다학제진료 시스템이다. 집도의의 누적된 수술 경험과 더불어 폐이식 환자를 중심으로 흉부외과, 호흡기내과, 마취통증의학과, 감염내과,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장기이식센터, 수술실, 중환자실, 병동 등 모든 의료진이 하나의 폐이식팀을 이뤄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중환자 관리를 시행해 수술 후 출혈이나 합병증을 크게 줄여왔다.

폐는 심장이나 간, 신장 등 다른 장기와 달리 뇌사자 기증이 적어 이식 대기가 길 뿐 아니라 호흡 과정에서 외부 공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감염 위험이 크다. 이식 거부반응도 심해 이식 후 생존율도 높지 않은 편이다.

특히 중증 환자 비율이 높은 서울아산병원에는 에크모나 기계적 환기장치에 장기간 의존해 온 폐이식 대기 환자들이 많았다. 이러한 환자들에게 폐를 이식하는 건 금기사항에 가까웠지만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은 과감한 결단을 내려 수술을 진행했다. 그 결과 에크모나 기계적 환기장치를 단 고위험 환자들에게도 폐이식이 가능하고 수술 성공률에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다.

홍상범 호흡기내과 교수는 “폐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이식 거부반응과 여러 합병증을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며 "서울아산병원 폐이식팀은 고도화된 중환자 치료 시스템을 통해 이식 환자들의 면역억제제 복용을 적절히 조절하고 올바른 호흡재활 운동을 도와 환자들의 장기 생존과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승일 흉부외과 교수는 “간이나 심장 등 다른 장기에 비해 낮았던 폐이식 생존율이 이식 환자 3명 중 2명이 5년 이상 생존할 만큼 크게 향상됐다"며 "앞으로도 폐이식팀의 탄탄한 팀워크와 유기적인 다학제 진료시스템을 바탕으로 더 많은 말기 폐부전 환자들이 새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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