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정부군이 17일 친(親)러시아 반군을 상대로 포격을 감행해 친러 반군이 대응 사격을 벌였다고 러시아 언론이 보도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포격 사실을 부인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을 찾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매체가 포격을 보도한 만큼 ‘자작극’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15일(현지 시간) 러시아의 일부 병력 철수 발표로 위기감이 다소 누그러지는 듯했던 우크라이나 사태가 다시 긴장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스푸트니크통신 등 러시아 매체는 이날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오전 4시 32분(우크라이나 시간)과 6시 42분에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인) 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를 공격했다”며 “오전 9시 50분에는 도네츠크주 외곽 방향으로 82㎜ 박격포를 5차례 추가로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이 지역 내 친러 반군은 우크라이나의 포격에 대응해 보복 공격을 했다”며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정부는 “포격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오히려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친러 반군이 루간스크주 마을을 포격해 유치원 건물 등이 파손됐다”며 “인명 피해는 없다”고 발표했다.
돈바스 지역에서는 2014년부터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분리주의 반군과 이들을 진압하려는 우크라이나 정부군 간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 돈바스 내 친러 분리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에 속했던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병합된 뒤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해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추진해왔다. 갈등이 이어지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긴장 완화를 위해 2015년 중화기 철수 등의 내용을 담은 ‘민스크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세부 조항에 대한 이견으로 협정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된 병력의 일부를 철수했다고 발표하며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긴장감이 되살아나는 모양새다. 특히 기존에 갈등이 있었던 돈바스 지역이 새 뇌관으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1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돈바스 지역 내에서 러시아어권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와 차별이 자행되고 있다”며 “이는 집단 학살”이라고 말하면서다. 외신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돈바스 내 자국민이 피해를 본다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 침공 구실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 정보 당국은 최근 러시아가 침공 구실을 만들기 위해 오히려 자신들이 공격당한 것처럼 꾸미는 ‘가짜 국기’ 작전을 준비 중이라고 파악한 바 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전쟁 위협이 가라앉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미 고위 당국자는 이날 “러시아의 철군 주장은 거짓이며 오히려 우크라이나 국경 근처에 최대 7000명의 병력을 추가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우리가 현재 파악하는 모든 징후는 러시아가 전쟁을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동안 겉으로는 대화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보다 더 분명하게 러시아의 철군 주장을 허위라고 규정한 것이다.
나토 역시 러시아의 주장을 믿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현장에서 어떤 긴장 완화의 신호도 보지 못하고 있으며 병력이나 장비 철수도 보고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가 물리력을 동원해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은 이제 유럽의 뉴노멀로 봐야 한다”며 “회원국 장관들과 동유럽 일대에 신규 나토 전투단 배치를 검토하기로 했으며 세부 사항이 앞으로 수주 내에 보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이날 ABC 인터뷰에서 “불운하게도 러시아의 말과 행동에는 차이가 있다”며 “의미 있는 철군은 없다”고 재차 밝혔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매우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면서 “방아쇠를 오늘 당길 수도, 내일 당길 수도, 다음 주에 당길 수도 있다”고 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미국의 휘발유 가격에 영향을 주고 이는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면서 “나는 이것이 고통이 아닌 척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서방의 히스테리가 계속되고 있다”고 맞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