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인생 후반, 삶을 바꾸고 싶다면 패션을 바꿔라”

■시니어 패션 인플루언서이자 ‘아저씨즈’ 시니어 모델 지성언 씨

LG상사 재직 당시부터 패션에 관심 많아

중국 상하이 법인 대표 시절 길거리 캐스팅 되기도

은퇴 준비 없었지만, ‘나눔’과 ‘도전’을 인생 후반 키워드로 정해

시니어 겨울철 패션 아이템 ‘비니’와 ‘패딩레깅스’ 추천

사진=박성민사진=박성민




“젊어선 명함이 본캐릭터고 패션이 부캐릭터라면, 나이 들면 패션이 본캐릭터가 됩니다.”



인생 2막 시니어 인풀루언서이자 시니어계 BTS라 불리는 ‘아저씨즈’의 모델로 활동하는 지성언(66) 씨의 말이다. 지성언 씨의 패션에 대한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게 아니다. LG그룹에 다니던 시절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감청색 정장을 입고 다닐 때, 그는 양말이나 넥타이에 포인트를 줘 같지만 다른 패션을 구현해 냈다. 유달리 튀고 싶은 날에는 정장에 행커치프를 꽂거나 갈색 구두를 신어 패션 감각을 뽐내기도 했다.

그렇게 소심하게 패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던 지 씨가 본격적으로 끼를 발휘한 건 LG그룹의 패션브랜드인 LF의 중국 상하이 법인장으로 발령받으면서다. “무역을 담당하다 패션분야로 옮겨가니 너무 좋아 그동안 숨겨놨던 패션 감각을 다 발휘했죠.” 당시 그의 나이 50대였다. 지씨는 그때 색깔 뿔테안경을 끼고 청바지를 입기엔 50대가 ‘너무 늦은 건 아닌가’라는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만약 그때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시니어 패션 인플루언서 지성언’은 없었다. 라이프점프는 몸소 시니어들에게 ‘지금 시작하는 게 가장 빠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지성언 씨를 직접 만나 그의 삶과 패션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 시니어 패션 인플루언서를 직접 만나게 돼 영광이다. 반갑다.

“하하 나도 반갑다. 무엇보다 그냥 시니어 모델이 아니라 시니어 패션 인플루언서라고 불러줘서 너무 좋다.”

- 뿔테안경에 청바지를 입은 할아버지라니 너무 멋지다. 오늘 패션의 콘셉트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점잖게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는 것으로 정해놨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니어 패션 인플루언서니까 가능하면 패션너블하게 입는 게 좋겠더라. 그래서 청바지에 흰색 이너를 입고 날이 따뜻해 재킷을 걸쳤다. 흰색 이너는 다소 밋밋할 수 있어 위쪽에 포인트가 있는 것으로 골랐다. 마지막으로 뿔테안경을 껴 포인트를 줬다. 하하 사실 오늘 패션의 포인트는 여기(다리를 들어 올리며) 양말에 있다. 알록달록한 양말로 단조롭고 밋밋할 수 있는 패션을 패셔너블하게 만들어 준다. 이 양말 패션은 시니어들도 잘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 오늘 패션의 결정판이 양말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패션 감각이 남다른데,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았나.

“그렇다. 학창시절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그렇지만 학생 땐 입고 싶은 옷을 마음대로 입을 수 있는 형편이 안됐다. 사회에 나가 직장에 다니면서는 경제력은 됐지만, 주위의 시선 때문에 감춰둔 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었다.”

-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는 끼도 있더라. 같은 정장을 입어도 다르게 입었을 듯한데 어떤가.

“첫 직장이 LG그룹의 종합상사였다. 직원들이 모두 교복처럼 감청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를 주로 입었다. 나는 당시에도 다른 사람들과 달리 보그나 에스콰이어, 레옹 등 패션잡지를 즐겨보며 흉내를 조금씩 내려고 했었다. 그렇다 보니 같은 감청색 정장에 가끔은 튀는 넥타이를 매기도 하고, 갈색구두를 신거나 행커치프로 포인트를 줬다. 생각해보면 그럴 때마다 나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을 은근히 즐겼던 것 같다(웃음). 다행히 은퇴 전 마지막 10년을 LG그룹의 패션사업인 LF 상하이법인장을 지내게 되면서 마음 놓고 패션감각을 뽐냈었다.”

- 은퇴 전 패션과 지금의 패션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내가 종합상사에 재직 중일 때와 LF 상하이 법인 대표를 할 때 옷을 대하는 태도가 극명하게 달랐다. 사실 은퇴 전이라기보다는 종합상사에 있을 땐 튀지 않기 위해 옷을 입었다면, 지금(상하이 법인 대표 당시를 포함해)은 튀기 위해서 옷을 입는다. 무엇보다 내가 즐겁고 옷을 잘 입었을 때 나를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을 즐기기 위해 옷을 입는다.”

- 은퇴 후 본격적으로 모델일을 하기전 이미 중국에서 길거리 캐스팅된 경험이 있다고.

“아직 LF 상하이 법인 대표로 있을 때다. 중국 상하이 신천지를 걷는데, 광고를 찍자는 제안을 받았다. 중국에서 혼자 지내고 있을 때라 가족에게 물어보지 않고 그냥 저질러 버렸다. 그때가 모델로서 첫 데뷔였다.”

중국에서 촬영한 광고 속 지성언(가운데) 씨 모습/사진=지성언중국에서 촬영한 광고 속 지성언(가운데) 씨 모습/사진=지성언



- 광고 모델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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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았다. 길거리 캐스팅되는 순간 내안에 잊고 있었던 스타에 대한 욕망이랄까. 꿈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 경험 덕분에 한국에 돌아와 ‘아저씨즈’를 통해 시니어 모델까지 할 수 있었던 듯하다.”

- 듣고 있으니,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패션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가.

“맞다. 패션은 그 사람의 애티튜드를 나타내 주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패션만큼 한 번에 그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 패션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국 사회적인 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시니어들에게 패션은 없어진 명함을 대신해 나를 알리기 가장 좋은 수단이다.”

- 패션뿐 아니라 삶에 변화를 주는 것을 주저하는 시니어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주저하지 말고, 지금 당장 결심하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건 주저하지 않고 마음이 가는 대로 해 지금은 시니어 패션 인플루언서로 살고 있어서 해줄 수 있는 말이다. 특히 패션은 나이 들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인생 후반에 인생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모 그중에서도 패션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 시니어들이 따라 하기 좋은 겨울철 패션 스타일링을 제안해달라.

“시니어들의 겨울철 패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보온이다. 보온을 유지하면서 멋을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패션 아이템이 바로 비니다. 이왕이면 원색의 컬러풀한 비니를 써 젊음와 보온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것을 권한다. 또 하나 비밀병기가 있는데, 패딩레깅스가 바로 그것이다. 겨울철 실루엣과 활동성 둘 다 잡을 수 있어 너무 좋다.”

- 인생 2막을 너무 즐겁게 살고 있어서, 퇴직 전 은퇴 후 삶에 대한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아무런 준비를 못했다.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듯 하루하루 살기 바빴다. 다만 은퇴 후 어떻게 살지에 대한 방향성만큼은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나눔’과 ‘도전’ 두 단어다. 은퇴 후 다른 기업에서 대표를 맡아줄 것을 제안해 오기도 했지만, 그것을 마다하고 한국에 돌아와 차이나탄 중국어교육 스타트업에 합류한 것, 또 지금의 아저씨즈 멤버로 활동하는 것 모두가 나눔과 도전이라는 방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 길을 아직까진 경로이탈하지 않고 잘 가고 있는 듯하다.”

지성언(뒤에서 두번째) 씨는 현재 시니어 모델 ‘아저씨즈’로 활동하고 있다./사진=지성언지성언(뒤에서 두번째) 씨는 현재 시니어 모델 ‘아저씨즈’로 활동하고 있다./사진=지성언


- 인생 2막에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선 인생 1막이 중요한 듯 하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인생 2막에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선 나만의 무기 또는 콘텐츠를 인생 1막에서 미리 준비하면 좋을 것 같다. 본캐릭터를 더 전문화하는 것도 좋고, 일찌감치 부캐릭터를 만들어 특화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쉽지 않지만, 인생 1막부터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고, 실제로 주인공이 되어보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해볼 것을 권한다. 그래야 인생 2막엔 정말 ‘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다.”

- 최근에 관심 갖고 하는 일이 있다면.

“요즘 ‘아저씨즈’의 모델 8명이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나 춤 연습을 하고 있다. 아저씨즈가 브레이브걸스의 롤린 커버 댄스를 춰 더 유명해졌다. 공중파방송 뉴스에도 출연했다. 그 일을 계기로 계속 춤 연습하고 있다. 잘하는 것을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 이 나이에도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한다.”

- 살아보니 ‘멋지게 나이 든다’는 것은 어떤 건가.

“멋지게 나이 든다는 것은 어쩌면 세월과 싸우는 게 아니고, 꿈과 싸우는 과정 아닐까. 자신의 꿈을 잃지 않은 채 점점 더 진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인 것 같다. 나이 들었다고 아무것도 안 하면 심심하고 무료한 고통이 오는 게 인생이다. 우선 다 큰 어른이 무슨 꿈을 갖냐는 주변의 시선부터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도전으로 새로운 오늘을 만들어내면서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확실한 오늘을 살아가는 게 멋지게 나이 드는 게 아닐까 싶다.”


정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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