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2월 18일, 50대 남성 김대한(2004년 사망)이 저지른 방화로 인해 192명이 숨지는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지 19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방화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엔 서울 강남구와 강동구에서 남자친구와 다투던 여성들이 불을 지르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방화는 남에게 복수하기 위한 의도로 홧김에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 큰 인명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경각심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히 상습 방화범일수록 망상성과 반사회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교정시설에서 이들에 대해 강화된 심리 치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방화범죄, 5년간 6868건…지난주 연인과 다투다 방화하는 일 연이어
19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생한 방화범죄는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났던 2003년 1713건, 2009년 1866건, 2015년 1646건, 2020년 1210건으로 감소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매년 1000건을 거뜬히 넘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발생한 방화는 총 6868건이다. 1년에 평균적으로 1374건의 방화 사건이 일어난 셈이다. 매년 수천 건에 달하는 원인미상 화재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방화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특히 최근엔 연인과 다투다 홧김에 불을 내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40대 여성 A씨는 지난 11일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자택에서 남자친구와 다툼을 벌이다 홧김에 라이터로 옷에 불을 붙였다. 이 화재 아파트 주민 5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3일 후인 14일에는 30대 여성 B씨 또한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레지던스 호텔에서 남자친구와 다투다가 가스레인지로 옷에 불을 붙였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한밤 중에 투숙객 60명이 대피했다. 경찰은 A씨와 B씨를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입건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방화 동기, ‘보복’이 최다…인명피해 위험 높은데 재범하는 경우 多
이처럼 방화는 타인에게 보복·복수하기 위한 동기에서 우발적으로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서종한 영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2020년 발간한 논문에서 방화범 135명의 면담보고서를 바탕으로 방화 동기를 연구했는데, 비(非) 연쇄 방화 79건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유형이 특정인과의 관계에서 불만이 생겼을 때 상대방에게 복수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을 지르는 '보복 동기 방화'(37건)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범죄은닉(19건), 무동기(16건) 순이었다.
문제는 방화는 홧김에 저지르더라도 인명 피해를 초래할 위험이 높은 데다가 상습적인 방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현행 형법이 현주건조물방화에 대해 인명 피해가 없더라도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이유다. 조성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이 2018년 낸 논문을 보면, 2013년 벌어진 방화 사건의 경우 재범에 의한 경우가 73%에 달했다.
지난 2020년 서울 마포구 공덕동 모텔에서 벌어진 방화 사건은 상습적으로 이어지는 방화가 얼마나 큰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70대 남성 C씨는 그 해 11월 25일 술에 취해 모텔에 있는 의자로 집기를 부수던 와중에 이를 말리던 모텔 주인에게 불만을 품고 불을 질렀다. 이 일로 투숙객 3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숨졌는데, C씨는 동종범죄로 집행유예 처벌을 받은 전력이 3회나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C씨는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징역 25년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교정시설서 심리치료 제공 중이지만…"특화된 프로그램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망상과 반사회성이 원인이 된 상습 방화범들에 대한 치료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법무부에서는 재범위험이 높은 수형자의 범죄유형을 고려해 11개 과정의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성폭력사범, 아동학대사범, 정신질환자, 동기없는 범죄자, 알코올관련사범 등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방화에 대한 특화 프로그램은 없지만, 검사를 거쳐 이 프로그램들에 참여해야 한다고 판단되면 참여시켜 심리치료를 하고 있다.
방화범 관련 연구를 진행한 바 있는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상습 방화범은 망상성과 반사회성이라는 특징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방화범이 전체 범죄자 중에서 극히 일부이다보니 지금 교정시설에서 방화범에 대한 특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대범죄인 만큼 방화에 특화된 심리 치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