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9시40분 광주 송정매일시장 인근 서광주새마을금고 본점 앞에 백여명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서 있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기다리는 인파였다. 윤 후보는 공식 선거 운동 시작 이틀 째 첫 일정으로 광주 유세를 택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로 전날 내린 눈이 녹아 도로가 젖어 있었다.
이곳은 윤 후보가 유세할 현장에서 일직선으로 약 100여미터 떨어진 장소이었다. 윤 후보는 이곳에서 내린 뒤 시장 골목을 걸어 유세장으로 가기로 했다.
윤 후보에게 반대 의견을 개진하려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서광주새마을금고 인근 골목에 20대로 보이는 수 명이 손팻말을 몸에 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윤 후보의 동선을 따라 시장 골목을 걸어보니 인이어 이어폰을 낀 젊은 사람들이 십여명이 서 있었다. 다른 지역 유세 현장에서는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윤 후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대비한 경호 인력으로 보였다.
골목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상인들에게 이유를 물어봤다. 5일장이 열리는 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송정매일시장에서는 매 3일, 8일에 5일장이 열린다. 한 60대 상인은 “장날에 찾아서 와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지난해 11월28일 장날에 맞춰 방문했다고 한다.
오전 9시50분께 윤 후보가 탄 카니발이 서광주새마을금고 앞에 섰다. 윤 후보는 남색 정장 자켓을 걸친 차림이었다. 안에는 감색 니트에 핑크색 셔츠를 받쳐 입었다. 열성 지지자들이 “와아” 소리를 내며 윤 후보를 반겼다. 윤 후보는 지지자 몇 명과 악수와 주먹인사 등을 나누었다.
윤 후보는 수행단과 경호인력 십수명과 함께 시장 골목을 서서히 걸었다. 윤 후보에게 다가가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선제 타격 규탄한다!”. 한 가게 앞에 서 있던 한 젊은이가 갑자기 외쳤다. 윤 후보의 선제타격론을 비판한 것이다. 다만 윤 후보에게 뛰어들지는 않고 곁에서 몇 미터 따라가다 말았다.
윤 후보가 유세차에 접근하자 모여 있던 인파로부터 함성이 터져나왔다. 유세차 앞에는 일이백여명 남짓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중 삼 분의 일 가량은 빨간 마스크를 썼다. 열성 지지자거나 당원으로 보였다.
윤 후보는 연설에서 광주에 복합쇼핑몰이 없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고 나섰다. 그는 “(광주 시민들이) 복합쇼핑몰을 간절히 바란다”며 “민주당이 (유치를) 반대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십년에 걸친 이 지역의 민주당 독점 정치가 광주와 전남을 발전시켰느냐”며 “시민들이 원하는데 정치인이 무슨 자격으로 이런 쇼핑몰 하나 들어오는 걸 막을 권력이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후보는 연설을 끝내고 연단 옆으로 나와 고개 숙여 두 차례 인사했다. 그리고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했다. 그 자세에서 주먹을 쥐어 보이기도 했다. 전날 부산 유세에서 처음 선보인 어퍼컷 세러머니는 하지 않았다. 다른 지역 유세 때보다 상대적으로 차분한 모습이었다.
윤 후보의 유세 연설이 끝난 뒤 주변을 둘러봤다. 길 건너편에 윤 후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나쁜 열정 열차 王 무당정치 신천지유착 멈춰’ 등 여러 손팻말을 들고서 소리 지르고 있었다. 한 젊은 여성은 손팻말을 든 사람 곁에서 실시간 라이브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검찰총장 시절 신천지를 압수수색 하자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걸 거절했었던 윤석열”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가 띄운 윤 후보의 신천지 압수수색 거부 의혹을 문제 삼은 것이다.
윤 후보 지지자도 가만 있지 않았다. 빨간 마스크를 쓴 젊은 남성은 이들을 향해 “검찰 사칭 공화국, 전과 4범 공화국, 형수 찢는 공화국”이라고 악다구니를 썼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를 공격하는 사안들로 반격한 것이다.
‘무당공화국 검찰공화국 결사 반대’라는 파란색 바탕 손팻말을 들고 “윤석열은 사퇴하라”고 수 차례 외치는 남성도 있었다. 그에게 ‘민주당 당원’이냐고 묻자 “그냥 시민”이라고 답했다. 광주 남구에 사는 76세 전정으로 자신을 소개한 그는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저런 사람이 집권하면 소 등가죽이 아니라 국민들 등가죽을 벗길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윤 후보를 향해 공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호남 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윤 후보의 광주 방문은 지난해 6월 정치 참여 선언 이후 이번이 다섯번째지만 반대 시민들의 시위는 여전했다. 윤 후보는 앞서 5.18민주묘지 참배를 갈 때마다 일부 시민들의 반대로 헌화와 분향을 하지 못했다.
윤 후보를 환영하고 반기는 사람들도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유세 인원은 주최측 추산 500명. 비슷한 시각에 진행한 15일 서울 청계광장 1,500명, 17일 경기 안성 3,000명에 한참 못 미치는 숫자다.
광주는 호남에서도 윤 후보에게 가장 마음을 안 여는 지역이라는 게 중론이다. 실제로 기자가 윤 후보 방문 직전 송정매일시장 상인 수 명에게 대선 민심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냉담한 반응에 부닥쳤다.
몇 차례 인터뷰 시도 끝에 익명을 조건으로 40대·60대 상인에게 승낙을 받아냈다. 60대 상인은 윤 후보에 부정적인 민심부터 전했다. 그는 “윤석열 찍으면 큰일난다고 벌써부터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에 전향적인 표심도 설명했다. 그는 “(민주당이) 정책 잘못하면 안 찍어준다 하잖아. (그러나) 투표소 들어가면 딱 손이 가버려”라며 “미워도 한 번 더 밀어주자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40대 상인은 젊은층이 중노년층과는 다르다고 전했다. 그는 “어른들은 민주당이 강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다르다”며 “젊은 사람들은 당을 떠나서 사람을 보고 내 자식들이 앞으로 살아갈 때 어떻게 잘 살 수 있겠는가 그런 걸 본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표심이 유동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40대 상인은 “2030대는 안 찍겠다는 사람도 많다”면서 “누군가 돼야 한다면, 이쪽이 낫다(고 판단한다)면 이쪽으로 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60대 상인도 “우리도 아직까지 안 정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그는 ‘원래 민주당을 찍었느냐’는 질문에 “그건 여기서 말 못한다”고 말을 아꼈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윤 후보와 국민의힘이 설득력 있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인다면 표를 줄 광주민이 꽤 있다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은 윤 후보의 이날 방문 이후 광주 민심 공략에 고삐를 죄고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당일 페이스북에서 광주 복합쇼핑몰 유치를 공약으로 공식화했다. 다음날에는 복합쇼핑몰을 주제로 민주당 측과 토론을 열어달라고 지역 방송사 3곳에 공문을 보냈다. 이는 광주뿐 아니라 전국민의 관심을 끌어모으면서 쟁점화에 성공한 모양이다.
이 대표는 18일 페이스북에서 “광주 복합쇼핑몰 외에도 여러가지 호남의 발전을 위한 이슈들을 발굴해서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남 득표율 목표치를 기존 25%에서 30%로 올린다고 공언했다. 이는 2012년 대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호남 득표율 10.5%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전북 13.2%·전남 10.0%·광주 7.8%를 기록했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에는 전북 35%·전남 30%·광주 25% 내외를 염두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60대 상인은 ‘광주에는 윤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들이 아직은 많이 없느냐’고 묻자 “그건 모른다. 겉하고 속하고 틀리다(다르다)”고 말했다. 광주민의 속내가 어떤지는 18일 뒤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