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품 기업 창업주 2세인 A 씨는 자녀 B 씨가 체류하고 있는 해외에 아무런 기능이 없는 ‘유령 회사’를 설립한 뒤 한국 본사와 내부 거래를 통해 마련한 유보금으로 현지 부동산을 사고팔아 거액의 차익을 남겼다. B 씨는 현지에서 이 자금을 증여받아 고가의 아파트를 사들이는 한편 생활 자금으로 사용했다.
국세청이 해외 법인 등을 활용해 조세를 회피한 역외 탈세 혐의자 44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2019년 이후 5차례에 걸쳐 역외 탈세 혐의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해 1조 6559억 원의 탈루 세금을 추징한 바 있다.
이번 역외 탈세 세무조사를 유형별로 살펴보면 일명 ‘꼭두각시 현지법인’을 활용한 자산가의 부자 탈세 혐의자가 총 21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법인을 활용한 탈세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최근 들어 수법이 더욱 정교하고 은밀해지고 있다는 게 국세청의 설명이다. 현지법인을 세울 때도 이전에는 서류상 페이퍼컴퍼니만 설립했지만 최근에는 사무실을 마련하는 등 형식적 외관을 갖추는 한편 소유 구조도 다단계로 설계해 실소유주를 찾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된 수백억 원대 자산가 C 씨는 조세 회피처에 직원 명의의 꼭두각시 법인을 세운 뒤 국내 본사로부터 컨설팅 비용 및 대여금 명목으로 거액을 송금하고 현지에서 이를 빼내 추적이 어려운 해외 주식 취득에 사용했다.
다국적기업이 국내 사업장을 은폐해 세금을 탈루한 혐의도 13건 적발됐다. 우리 세법은 국내에 고정 사업장이 없거나 수익 사업을 하지 않을 경우 법인세 신고 의무를 지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활용해 고정 사업장을 연락사무소 등으로 위장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회피한 기업들이 대거 조사 대상에 올랐다.
외국계 D사는 국내 자회사에 임원을 파견해 실질적으로 국내 사업을 통제하고 있으면서도 서류상 계약으로는 자회사가 단순 업무 지원 용역만 제공하는 것으로 꾸며 고정 사업장을 은폐했다. 또 외국계 E사는 국내에서 6개월 이상 건설공사를 수행하면서도 설계·제작·설치·감독 등 주요 공정 계약을 쪼개 체결하는 방식으로 고정 사업장을 숨겨 오다가 국세청에 적발됐다.
이 밖에 불공정 자본거래를 통해 법인 자금을 빼돌린 법인 10곳도 국세청 조사를 받게 됐다. 국내 반도체 설계 회사인 F사의 경우 해외 공장을 매각하면서 서류상 현지법인을 청산한 것처럼 꾸며 투자액을 전액 손실 처리해 부당이득을 챙겼다.
전애진 국세청 국제조사과장은 “역외 탈세가 새로운 탈세 통로나 부의 대물림 창구가 되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