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22일 대한항공(003490)과 아시아나의 기업결합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메가 캐리어(초대형 항공사)’ 탄생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됐다. 다만 두 회사의 중복 노선 중 국제선 26개, 국내선 8개 노선의 슬롯 반납과 국제선 11개 노선의 운수권 반납이라는 조건이 달리면서 합병의 시너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한 안정적인 인수 자금 확보 문제에 더해 노조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다는 점도 불안 요소로 꼽힌다.
공정위는 국제선과 국내선 일부 노선의 운수권 및 슬롯 반납을 조건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020560)의 기업결합을 22일 승인했다. 이번 승인으로 자산 40조 원, 연매출 13조 원 규모의 메가 캐리어 등장이 가시화됐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의 합병이 완료될 경우 국제여객 수송 인원 기준 세계 10위, 여객 및 화물 운송 규모 세계 7위로 올라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번 공정위의 결정을 수용하고 향후 해외지역 경쟁 당국의 기업결합심사 승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대한항공은 합병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정위가 조건으로 내건 운수권·슬롯 반납 조치의 대부분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운항 축소와 슬롯 이전 탓에 합병에 따른 시너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초 코로나19의 회복을 전제로 양사 통합이 연간 3000억~4000억 원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중복 노선을 효율화하고 연결편을 강화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운수권과 슬롯 제한으로 규모의 경제 실현은 한층 요원해진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자금 확보도 남아 있는 과제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필요한 자금은 총 1조 8000억 원이다. 대한항공은 유상증자와 기내식 기판사업 매각, 서울 송현동 부지 매각 등으로 자금을 확보했지만 여전히 추가 자금이 필요한 상태다. 인수가 늦어지는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물리적인 결합에 앞서 화학적 결합도 이뤄내야 한다. 오랜 기간 경쟁 관계였던 두 항공사가 노조 반발 없이 통합에 이르기 위해서는 ‘고용 안정’이 핵심이지만 조건부 승인에 구조 조정에 대한 우려는 더 커졌다. 통합으로 업무가 겹치는 인력은 최소 1000명 이상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인위적 구조 조정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슬롯 및 운수권 제한으로 신규 항공사의 사업 범위가 줄면 장기적으로는 기존 고용 인원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항공 산업은 코로나19와 같이 외부의 변수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이행감시위원회로부터 10년간 감시를 받으면 경영 자율성이 악화될 뿐 아니라 외부 불확실성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저비용항공사(LCC) 업계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대한항공 계열사인 진에어와 아시아나항공 계열사인 에어부산·에어서울이 통합되면 국내 LCC 업계 1위인 제주항공을 뛰어넘는 LCC가 된다.
일각에서는 이번 통합으로 다른 LCC 업체들에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는 분석도 있다. 이미 제주항공·티웨이항공 등이 장거리 노선을 눈여겨 보고 있다. 가장 먼저 티웨이항공이 이달 말 중대형 기종인 A330-300 1호기를 도입하고 미국과 서유럽 운항이 가능한 대형기 도입 검토에 들어갔다. 제주항공도 장기적으로는 중장거리 노선에의 진입을 저울질하고 있다. LCC 업계 관계자는 “중장거리 노선에서 사업의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본다”며 “다만 이번 공정위 조치에서 곧바로 항공기 투입이 가능한 일본·중국 노선 다수가 제외된 점은 아쉽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