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진입 명령에도 상대적으로 적게 떨어지다가 낙폭을 확대했습니다. 이후 오후2시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계기로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서 하락폭을 상당히 줄였는데요. 그럼에도 나스닥은 전 거래일 대비 1.23%,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각각 1.01%, 1.42% 내렸습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대외경제은행(VEB)을 포함한 2곳의 러시아 은행의 달러거래를 막고 러시아 정부의 채권발행도 금지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다만 “미국과 동맹은 외교에 여전히 열려 있다”, “미국은 러시아와 싸울 의도가 없다”고도 했습니다.
앞서 미 동부시간으로 지난 17일 ‘3분 월스트리트’를 전해드린 이후 금요일과 주말을 거치면서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분위기가 급변했고 지금 상황까지 오게 됐는데요. 우크라이나 긴장이 극대화한 이후 처음으로 열린 미국 증시의 분위기와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바이든, 침공(invasion) 단어 사용…“러시아가 침공 늘리면 제재확대” 사실상 마지노선 제시
오늘 상황을 살피기 전에 알아둘 부분이 있는데요.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군 진주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지난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내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독립을 요구한 이후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사이의 전쟁이 이어져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2014년 이후 러시아 정규군이 사실상 이곳에서 활동해왔다는 점이죠. 미 경제 방송 CNBC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이번 일을 진정한 침공(true invasion)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러시아군은 몇 년 전부터 이 지역에 있어왔다”며 “그래서 추가적인 러시아군 진입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말장난 같지만 침공(invasion)이냐 아니냐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명확하게 침공이라면 미국와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최고 수준의 돌이킬 수 없는 제재와 함께 당분간 러시아와의 소통 창구를 끊겠지만 러시아군의 돈바스 추가 진군은 이 부분이 약간 애매하다는 것이죠. 이 때문에 어제만 해도 백악관은 돈바스 지역 진군이 침공이냐에 대한 질문에 뚜렷한 답을 하지 않고 “러시아군은 지난 8년 동안 그곳에 주둔해왔다”는 말로 에둘러 답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하루 만인 오늘, 바이든 대통령이 침공이라고 했습니다. 다만, “침공이다”라고 단언한 게 아니라 “침공의 시작”이라고 했죠. 여기에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습니다.
러시아의 행동에 침공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러시아에 분명한 경고 메시지를 낸 것입니다. 의미가 크지요. 그러면서 VEB 같은 러시아 은행의 달러 거래를 막고 러시아 국채발행도 금지했죠. 이는 돈바스 추가 진군이 미국의 ‘마지노선’이라고 선언한 꼴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단계적 제재 카드를 꺼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오늘 대통령 연설의 핵심은 이것이 첫 번째 제재라고 했다는 점”이라며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가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제재 수위를 높이겠다고 했다”고 전했는데요.
서방국가들은 계속해서 러시아의 목을 조이고 있습니다. 독일이 ‘노르트 스트림-2’ 가스관 사업 승인 중단 결정을 내렸고 영국은 러시아 로시야 은행과 흑해 은행, 러시아 국방부 계약의 70%를 담당하는 프롬스뱌지 은행 등 5곳과 재벌 3명을 제재하기로 했는데요. 이들은 영국 내 자산동결과 영국 기업 및 개인과 거래 금지, 입국금지 등을 당하게 됩니다. 유럽연합(EU)도 러시아 하원의원 351명을 포함해 27곳의 러시아 기관 및 개인에 자산동결과 비자금지를 하기로 했는데요.
이를 고려하면 앞으로의 상황 전개는 러시아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우리는 여기까지라고 했으니 앞으로의 상황은 러시아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하다는 건데요. 미러 정상회담이 무산됐지만 그렇다고 외교의 길이 완전히 끊긴 건 아닙니다. 아직 마지막 희망이 있는 것이죠. EU도 ”제재가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면서도 "전쟁을 피하기 위한 외교적 행동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외교적 해결도 러시아 뜻에 달려 있습니다.
“러, 우크라 전역으로 침공확대 할 것” vs “전방위 확전 가능성 낮아”
앞으로의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포함해 나머지 지역에도 침공을 개시해 우크라 정부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방안이 있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가 협상력을 갖게 된 만큼 이제 외교 테이블에 관심을 갖는 건데요.
월가는 지난 주 중후반까지만 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을 낮게 봤습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추가로 진군한 지금 상황에서는 어떨까요. 여전히 시장은 전면전, 즉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를 포함해 전역으로 쳐들어올 확률이 낮다고 보는데요. 누버거 버먼의 콘라드 살다나는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 침공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사실상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두 공화국에 대한 통제는 러시아가 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사실상 확보하게 된 상태에서 나머지 우크라이나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할 이유가 적은 것 아니냐는 말이지요. 이 경우 서방국가의 대규모 제재가 불가피합니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일단 미국의 제안을 일축하고 돈바스 지역으로 군대를 더 보내 실행력(?)을 보여준 만큼 앞으로는 협상에 주력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키예프를 침공해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면 그 부담도 큰데요. 유럽 주둔 경험이 있는 전직 미 육군 중장 벤 호지스는 “개인적으로는 이제 러시아가 협상을 위해 뒤로 물러나는 것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더 실현 가능성이 높다”며 “키예프에 대한 공격은 피를 많이 흘리게 될 것이고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추가적인 군사행동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의 고삐를 더 당기고 있는데요.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우리는 더 많은 러시아 병력이 병영에서 나와 전투대형을 이루고 공격할 준비가 돼 있는 것을 보고 있다”며 “러시아는 공개적인 군사행동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동안 러시아가 수차례 기만전술을 써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잠시 쉬어가는 척하면서 대화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추가적인 도발을 할 가능성이 있지요.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서방의 제재 수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더 제재를 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가 별로 없을 수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 경우 되레 사태를 더 키우는 게 협상력을 키워줄 수 있다고 오판할 가능성도 있지요.
CNBC의 간판 앵커인 짐 크레이머는 “러시아에서 나오는 메시지가 앞뒤가 안 맞는 것에 지쳤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러시아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이 어렵다는 건데요. 푸틴 대통령은 이날도 “당장 돈바스에 파병하는 게 아니”라며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고 중립국이 돼야 한다”고 했죠.
월가, “푸틴이 더 움직이느냐가 최대 관심”…우크라 사태, 3월 이후 연준 긴축 논쟁 재점화
결국 앞서 말씀드린 대로 현재 키는 푸틴 대통령이 쥐고 있습니다.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추가 침공을 자신들의 마지노선으로 정했지요. 푸틴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또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우크라이나 사태의 방향이 정해질텐데요.
데이비드 켈리 JP모건 자산운용 최고 글로벌 전략가는 현재 최대 우려가 원자재 가격 상승이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지금은 푸틴이 더 움직이느냐가 최대 관심사안”이라며 “만약 키예프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전체 지역에 침략이 이뤄지면 에너지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이어 “유럽이 러시아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사지 않기로 하면 더 심각한 상황이 되겠지만 어쨌든 현재 에너지 시장의 최고 관심은 푸틴이 다음에 무얼 하느냐”라고 덧붙였습니다.
추가로 이날도 월가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에 어떤 영향을 줄까 말이 많았는데요. ‘3분 월스트리트’에서 수차례 전해드렸듯 우크라이나 사태가 연준의 경로에 바로 직접적 영향을 줄 가능성은 낮습니다. 3월 금리인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구요.
1차로는 우크라 사태가 악화할수록 유가 상승에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한 단계 더 나아가 과도한 유가 상승이 경기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에너지를 상당 부분 수입하는 신흥국은 상대적으로 타격이 더 클 수 있다는 거죠.
최악의 경우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선임고문이 스태그플레이션에 관한 우려를 다시 한번 제기했는데요. CNBC는 “원유가격이 인플레이션을 높이고 세계경제를 둔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석유가격”이라며 “석유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3월 금리인상 이후에 연준이 계속해서 금리인상을 이어나갈지 아니면 속도를 늦출지가 결정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무연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평균 3.53달러입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90센트, 지난 달에만 21센트나 급등했는데요. 우크라이나 사태로 30~40센트가 더 오를 경우 0.5%포인트의 추가 물가상승 효과가 생긴다고 합니다. 지난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7.5% 증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픈 상황이 되지요.
제레미 시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 교수는 “연준이 위기를 이유로 긴축을 줄인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요. 지금이 1970년대 1980년대 초반과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연준의 인플레 대응이 늦어 그렇게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습니다.
상황이 매일,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시장의 분위기가 너무나 빨리 바뀌는 만큼 계속해서 전문가들의 분석과 전망을 업데이트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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