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당신의 습관·상처, 뼛속에도 기록된다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수 블랙 지음, 세종서적 펴냄





성인 인간의 골격은 206개의 뼈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아이의 경우 이보다 많은 270개다. 골격을 형성하는 뼈는 인간의 외형을 유지해 주기도 하지만 신체 정보를 담은 비밀의 열쇠이기도 하다. 가령 태아 때 형성되기 시작해 인체에서 마지막으로 성장하는 빗장뼈(쇄골)는 신체 나이를 알려주는 잣대 역할을 한다. 성장 과정에서 받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은 인간의 성장을 잠시 멈추게 하고 다리뼈에 가느다란 선을 남기는데, 해리스선(Harris Line)이라고 불리는 이 흔적은 아동학대 범죄를 밝힐 때 중요한 증거가 된다. 뼈는 피부와 지방, 근육 및 장기가 다 썩어 흙으로 돌아간 뒤에도 오랫동안 남아 있기 때문에 DNA나 지문으로는 진상을 밝힐 수 없어졌을 때 신원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뼈는 그 사람이 살아온 기억과 상처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 몸 속 뼈 하나하나에 고유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신간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는 법의인류학자가 쓴 뼈에 대한 이야기다. 법의인류학자는 작은 뼛조각 하나로 죽의 자의 신원과 사인을 밝혀낸다. 저자 수 블랙은 법의학 선진국인 영국에서도 최고로 손꼽히는 뼈 전문가로,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영국 법의학팀을 이끌고 전쟁 범죄 수사에 참여한 바 있다.



사건·사고를 마주하는 법의인류학자의 관심은 오로지 뼈 주인이 어떤 삶을 살았고, 그 사람이 누구였는가를 알아내는 것이다. 뼈에 기록된 그 사람의 경험을 찾고, 그 사람의 사연을 알아내는 정보를 추출하는 일이다. 저자는 책에서 '법의인류학자의 일은 짧은 멜로디만 듣고 곡명을 알아내는 퀴즈 같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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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저자가 법의인류학자로 활동하며 실제 겪은 사건들을 보여주고, 그가 뼈를 통해 죽은 자의 이름과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간 과정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책에 따르면 뼈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인생이 차곡차곡 기록되고 있다. 나이가 몇 살인지, 머리카락이 어떤 색이었는지 등 나의 모든 정보가 뼛속에 기록된다. 예를 들어 채식주의 식단은 피부, 연골, 뼈에 자국을 남긴다. 산악자전거에서 떨어졌던 일은 치유된 후에도 빗장뼈에, 체육관에서 근육 운동을 하며 보낸 시간은 결과적으로 근육이 부착되는 뼈가 강화되는 방식으로 각각 흔적을 남긴다.

신원을 밝히는 과정에서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역시 얼굴이다. 그 중에서도 치아는 인간의 골격 구조에서 유일하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신원 확인 목적으로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책은 설명한다. 치아는 나이를 판단하는데도 유용한 근거가 된다. 나이를 증명해주는 서류가 없을 경우 영구치 어금니를 보고 판단하기도 하는데, 영구치 어금니가 나오지 않은 아이는 7세 미만이다. 코카인 중독은 ‘메스마우스’라는 흔적을 치아에 남긴다.

두개골로는 나이, 성별, 인종을 알아낼 수 있다. 디지털몽타주 프로그램을 통해 뼈 위에 피부를 입혀 얼굴을 복원하는 것도 가능하다. 척추뼈는 주로 시신 절단 사건과 관련이 많으며, 갈비뼈는 범인이 범행을 저지를 때 가장 많이 노리는 부위이기 때문에 어떤 무기로 살해당했는지를 살피기에 좋다고 한다. 갈비연골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트랜스젠더인지 밝혀내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뼈는 호르몬 수치나 약물, 질병 때문에 인위적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규칙적으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복용하거나 여성이지만 규칙적으로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하면 연골은 남성과 여성이 갖는 두 가지 종류의 뼈 형성을 모두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법의인류학자로서 자신의 뼈가 화장돼 사라지거나 땅속에 묻혀 버리는 것은 큰 낭비라며 사후에 자신의 뼈를 연구용으로 기증하고 싶다는 뜻도 책을 통해 전한다. "뼈는 우리 몸의 발판이며, 피부와 지방, 근육 및 장기가 다 썩어 흙으로 돌아간 뒤에도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삶에서 우리가 살았던 방식을 증언할 마지막 파수꾼이어야 한다.” 1만 9000원.

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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