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포위해 맹공을 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2일(현지 시간) 제2의 도시인 하르키우(하리코프)에서는 러시아 공수부대가 진입해 병원 등 민간인 시설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이어갔다. 전날에도 키이우 TV 방송 타워를 공격하는 등 러시아가 공세 수위를 높이는 모양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 사이에서는 키이우가 과거 시리아 내전으로 초토화된 도시 알레포처럼 폐허가 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고조되면서 탈출 러시도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2일 2차 협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양측의 이견이 큰 만큼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지는 불투명하다.
이날 AFP통신은 우크라이나군 발표를 인용해 러시아 공수부대가 동부 하르키우에 진입해 현지 병원을 공격했으며 이에 따른 교전이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키이우에 대한 공습도 이뤄졌다. BBC방송은 지난 1일 키이우 서북쪽에 위치한 TV 방송 타워가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민간인 5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공격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의 목표물을 타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민들에게 경고한 직후 이뤄졌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TV 방송 타워는 가장 참혹한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사건 장소 중 하나였던 ‘바비야르’ 학살 사건 희생자들의 추모 시설 인근에 위치해 있다.
전날부터 키이우를 포위하고 있는 64㎞ 이상의 러시아군 행렬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으나 이는 수도 총공세를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런던 왕립연구소의 지상군 전쟁 연구원인 잭 월팅은 “러시아가 키이우에서의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러시아군은 키이우에 진입해 수도와 전기 공급을 통제하고 저항 세력이 집중된 곳에 강력한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방의 제재와 우크라이나 저항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이번 침공의 성공을 가를 풍향계가 될 키이우에서의 승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잠시 숨고르기 중이라는 것이다. 영국 가디언은 키이우가 과거 러시아군의 맹공으로 폐허가 된 시리아 알레포나 체첸공화국의 그로즈니처럼 될 수 있다는 공포 속에 키이우 기차역은 도시를 탈출하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남부에 위치한 인구 25만 명의 도시 헤르손은 이미 러시아군에 점령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고르 콜리카예프 헤르손 시장은 러시아군이 밤새 기차역과 항구를 장악했다며 “현재 교전이 진행 중”이라고 현지 언론에 밝혔다.
영국 싱크탱크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마티외 불레그 연구원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상황은 기본적으로 (이전과 다른) 두 번째 국면”이라며 “이전보다 더 잔인하고, (서방의 시선 등에) 눈치를 보지도 않고, 제한 없는 전쟁이 벌어져 더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유혈 사태도 더 잦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군의 키이우 진입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가 선제공격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지만 현실화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의 키이우 진입 시점을 알 수 없는 상황이라 자칫 보복 빌미만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개최가 불투명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2차 협상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긴장감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낙관론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양측이 다시 만나는 조건으로 러시아의 공격 중단을 요구한 만큼, 실제 회담이 이뤄질 경우 러시아의 무차별 공격이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2일 “러시아와 2차 회담을 오늘 밤에 갖는다”고 밝혔다.
다만 성과가 나올 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앞서 지난달 28일 열린 1차 협상에서도 양측의 요구 조건이 맞서며 회담은 결렬됐다. 당시 우크라이나 측은 즉각적인 휴전과 러시아 병력 철수를,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에 도네츠크와 루한시크 등 돈바스 지역의 독립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