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생명 설계하는 '인간의 가위질'…신은 허용했을까

■코드 브레이커

월터 아이작슨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크리스퍼 연구'로 노벨화학상 받은

유전자 과학자 다우드나의 성과 담아

우생학 등 디스토피아 위험성에도

"인간생존·유전자 결함 극복 위해

생명과학, 현명하게 진화를" 강조





2018년 11월 허젠쿠이 중국 난팡과기대 교수라는 인물이 세계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걸린 아빠의 유전자가 대물림 되지 않도록 초기 단계 배아에서 유전자를 편집한 쌍둥이 아기의 탄생 소식을 알린 것이다.



중국 정부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유전자 편집 기술 분야에서 달성한 획기적 업적’이라며 허젠쿠이를 국가적 영웅으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전방위적인 비난이 쏟아지자 중국 정부도 ‘불법 의료 행위죄’로 그에게 3년형을 선고했다. ‘룰루’와 ‘나나’라는 이름의 아기들에게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중국 정부는 공개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론상으로 수정된 게놈의 형질은 미래 세대에도 유전될 수 있다. 아이 개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책 ‘코드 브레이커: 제니퍼 다우드나, 유전자 혁명 그리고 인류의 미래’는 크리스퍼 가위(유전자 편집 기술)의 개척자인 제니퍼 다우드나의 삶을 통해 생명공학의 존재 이유와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우드나는 박테리아가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후천적 면역체계인 크리스퍼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밝혀낸 공로로 2020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의 과학적 업적은 유전자 편집 기술로 발전해 암과 유전병 치료, 수명 연장, 멸종 동물 복원 시도, 유전자조작식물(GMO)의 부작용 최소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백신 개발 등에 두루 쓰이고 있다.

저자는 세계적인 전기(傳記)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이다. 아이작슨은 전 세계 300만부가 팔린 ‘스티브 잡스’ 이후 10년만에 내놓은 신작에서 코드 브레이커, 즉 ‘암호 해독자’라는 제목대로 생명의 비밀을 좇는 한 여성 과학자의 성장기를 따라가며 제임스 왓슨의 DNA 이중나선구조 발견 이후 유전자 가위의 발전사를 드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저자가 다우드나에 주목한 이유는 “20세기 전반을 아우르는 첫번째 혁명이 물리학, 20세기 후반이 정보 기술의 시대였다”면 “이제 우리는 더 중요한 세 번째 시대, 생명과학 혁명의 시대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위원회의 설명대로 다우드나는 생명의 코드를 다시 썼고 유전자 가위를 통해 생명과학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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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슨은 어린 시절 진학 상담 교사에게서 “여자가 무슨 과학을 한다고”라는 말을 들었던 다우드나가 수많은 남성 경쟁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는지 생생하게 들여다 본다. 또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잡스, 아인슈타인, 벤저민 프랭클린 등 이전의 전기에서 수많은 천재들의 삶을 다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무엇이 혁신을 창출하는지 설명한다.

우선 자연의 경이로움에 대한 호기심이다. 또 오늘날 과학 세계는 한 명의 천재가 이끌지 않고 훌륭한 팀워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잡스 역시 자신의 최고 발명품으로 매킨토시나 아이폰이 아니라 그 같은 제품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팀을 꼽았다는 것이다. 크리스퍼 연구 역시 샤르팡티에 외에도 수많은 과학자들과의 크고 작은 협업을 통해 탄생했다.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도 특허권 분쟁은 무시한 채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공유한 과학자들의 국경을 넘어선 연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이 책은 다우드나가 주인공이지만 절반의 분량은 생명과학의 미래와 윤리 문제에 할애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초국가적 지도자는 정보기술을 사용해 개인의 자율을 말살한다. 하지만 유전자 기술에 기반한 전체주의 사회는 인간 자체를 개조한다는 점에서 ‘빅 브라더’ 사회보다 더 위험하다. 과연 유전자 조작 기술은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나 영화 ‘가타카’처럼 인류를 태어나기 전부터 우생학적으로 계급을 분류하는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로 안내할 것인가.

저자는 유전자 기술을 정부 통제가 아니라 개인 통제에 맡길 때 더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부유층 부모가 지능, 신체 등의 유전자 자질을 자유시장에서 돈으로 구매할 경우 세대가 거듭될수록 경제적 불평등은 물론 유전적 격차마저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진화는 느린 과정일 때 가장 잘 작동한다며 허젠쿠이처럼 급진적인 방식이 아니라 가능한 신중한 길을 택하자고 조언한다.

하지만 저자는 유전자 기술이 매우 두렵고 위험한 힘이라면서도 적절한 균형을 찾자고 강조한다. 그는 “크고 작은 모든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며 “크리스퍼 기술을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바이러스를 막아내고 유전자 결함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자연과 신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제 유전자에 함부로 손대지 못하도록 규제할 필요가 있고 인간의 결함이 진화의 산물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코로나나 암과 싸울 생각을 버리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연과 자연의 신이 무한한 지혜 속에서 한 종을 골라 제 게놈을 수정할 수 있도록 진화시켰는데, 어쩌다 보니 그게 바로 우리였다고.” 2만4000원

최형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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