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은 1888년 개항기 인천에 세워진 일본식 ‘대불호텔’이었으며, 두 번째 호텔이자 최초의 서양식 호텔로 1902년 서울 중구 정동에 ‘손탁호텔’이 들어섰다. 1914년 건립된 조선호텔은 본격적인 호텔업의 시작을 알렸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호텔 ‘웨스틴 조선 서울’이다. 일제강점기 철도국이 관할한 ‘조선철도호텔’로 시작해 해방 직후 ‘조선호텔’이 됐다.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이 점령했고, 서울 수복 이후에는 미군 휴양소로 사용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1967년에 신관 건축을 조건으로 미국 아메리칸항공이 인수해 1970년에 20층 건물로 새로 태어났다. 웨스틴호텔과의 제휴로 ‘웨스틴 조선호텔’로 불리게 된 이곳의 한국관광공사 측 소유분을 삼성그룹이 사들인 것이 1983년의 일이다. 신세계(004170)가 삼성에서 독립하며 1992년에 호텔을 넘겨받은 후 1995년에 웨스틴 지분까지 인수해 명실상부 한국의 대표 호텔로 우뚝 세웠다.
시청과 인접한 도심 한복판의 웨스틴 조선호텔 뒷마당에서 환구단을 마주하는 기분은 미세먼지와 마스크의 일상을 살다 잠시 울창한 숲에 들어간 듯 청신하다. 엄밀히는 옛 환구단 터의 황궁우가 석고(石鼓)와 함께 남아 있는 것이며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이다. 고종이 이곳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낸 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농경사회의 제천 의례는 고려의 원구제로 이어졌고 1457년에는 조선의 세조가 환구단을 설치하고 제사를 드리기도 했다. 꽤 오래 중단됐던 환구단 제사를 1897년 고종이 재개했다. 고려 때 명나라가 “하늘에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은 황제 뿐”이라며 제후국 고려의 원구제를 폐지하게 했던 것을 떠올린다면 고종이 자주국의 위상을 널리 알리려는 뜻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의 조선총독부가 호텔 공사를 이유로 굳이 환구단을 헐었던 의도도 앎 직하다. 지금 남아 있는 황궁우는 고종의 지시로 1899년에 완공된 3층짜리 8각 건물이다. 탄탄하면서도 화려하다. 3개짜리 북 모양을 가진 석고는 그로부터 3년 후,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해 세워졌다.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호텔답게 최고(最高) 수준의 미술품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있다. 정문에 들어섰을 때 맨 먼저 보이는, 로비 한가운데를 헨리 무어(1898~1986)의 조각이 차지하고 있다. 영국 태생의 조각가 무어는 2016년 6월 크리스티 런던 경매에서 대표적 시리즈 ‘와상(Declining Figure)’이 약 360억 원에 판매되기도 한 세계적 거장이다.
기념비와 인물상 위주로 전개되던 조각사에서 ‘생각하는 사람’의 로댕은 사실적인 인체 묘사에 적나라한 감정까지 담아내 현대 조각의 서막을 열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추상 조각’을 개척한 조각가가 있으니 알베르토 자코메티, 콩스탕탱 브랑쿠시, 그리고 무어다. 영국에서도 제일 춥다는 요크셔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무어는 천부적 재능으로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는데 고전적 교육을 받았음에도 1925년 파리에서 본 아즈텍 문명의 조각들을 보고 마음을 뺏긴다. 유수의 박물관·미술관을 다니며 숱한 작품을 봤건만 근원적이고 아름다움은 정작 원시미술에 있었던 것. 파블로 피카소 등 당시 미술인들이 가장 오래된 원시예술에서 가장 새로운 예술적 도전을 찾으려 한 게 일종의 유행이기도 했다.
웨스틴 조선호텔 로비의 조각은 무어의 1985년작 ‘피난처 속 형상(Figure in a shelter)’이다. 작품 감상이 작가 명성과 제목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창이라 그런지 참전 군인의 투구 같은 두 개의 반구형 구조물 속에 어린 여자아이가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 들어앉은 생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머니의 품이 가장 따뜻한 피난처 아니겠나.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가스를 마시기도 했던 무어는 제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에서 바로 이 ‘헬멧(Helmet) 시리즈’를 시작했고 평생의 주제 중 하나로 삼았다. 전쟁 상황이 더욱 갈구하게 만드는 피신과 안온의 감정을 그는 유려한 형태의 추상 조각으로 그려냈다. 천천히 걸어 조각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자. 육중한 청동조각이지만 강가에 뒹구는 조약돌 같은 부드러운 곡선미를 지녔다. 파도와 바람에 쓸리기라도 한 듯한 표면도 돌멩이를 닮았다. 반듯하고 매끈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대신 다정한 생동감을 얻었다. 둥근 껍질의 안쪽이 아늑한 동굴 같다. 세모꼴·타원형 등으로 빚은 형상을 인물처럼 볼 수도 있지만 산 위로 달이 뜬 풍경이라 해도 상관없겠다. 옛 환구단을 품은 세련된 현대식 호텔 로비에 생명을 품은 동굴 형상의 작품이라니 더욱 상징성이 크게 느껴진다. 무어의 조각은 2012년 1월에 설치돼 10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어는 삼성가와 인연이 있다.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이 1982년에 개관한 경기도 용인의 호암미술관에서 그의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호암의 막내딸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은 부친에게서 사업가 기질과 예술적 안목을 모두 물려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호텔의 관계사인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트리니티 가든에는 무어의 ‘와상’이 상설 전시 중이다.
조선호텔 로비의 엘리베이터 앞 양벽에 김환기·정창섭·전광영 등 한국 근현대미술의 거장들 작품이 번갈아 선보인다. 한동안 이곳을 차지했던 김환기의 ‘메아리’ 연작을 보기 위해 “식사 약속은 조선호텔 나인스게이트로 잡자”고 하는 컬렉터들이 많았다. 김환기의 1965년작 ‘메아리(Echo) 9’는 현재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3층 본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장처 프리미엄까지 더해져 당장 15억~20억 원에도 거래될 수 있을 법한 작품이다. 2018년에는 한지로 작업하는 정창섭의 ‘묵고’ 연작 중 흑색과 백색 작품이 양벽에 전시됐고 지금은 영국 태생의 에드먼드 드 왈의 설치작품이 걸렸다.
케임브리지대 영문과 출신의 드 왈은 일본에서 전통 도자를 배운 후 미술과 건축·도자를 접목한 독창적 작품 세계를 개척했다. 정문 쪽에서 봤을 때 오른쪽 벽에는 흰색, 왼쪽 벽에는 검은색 작품을 배치해 세련된 조화를 보여준다. 책장 같은 선반에 원통형·상자형 도자와 철판 등을 배열한 것인데 정물이면서도, 정갈한 도시의 풍경 같기도 하고 드문드문 거리를 유지한 현대인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목 또한 ‘작업과 나날들’ ‘우리 기후의 시(詩)’처럼 은유적이다.
로비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면 통유리 너머로 초록의 잔디밭이 바라보이는 창쪽 벽에서 윤명로의 ‘바람 부는 날 MX210’을 만날 수 있다. 196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전위적 변화를 이끈 윤명로의 작품은 관공서·은행 등 역사 깊은 주요 건물의 로비에서 이따금 마주칠 수 있는데 이 작품은 2010년에 그린 비교적 최신작이다. ‘균열’ 연작의 처절함, ‘얼레짓’의 몸부림이나 ‘익명의 땅’의 치열함과는 사뭇 다른 온화함을 느낄 수 있다. 서양화의 기법과 동양화의 정신성을 자유자재 넘나들던 노년의 작가는 눈 쌓인 앞마당을 쓸다 문득 빗자루로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을 그리기 시작했다. 창밖에서 부는 바람이 로비 안쪽 그림의 표면을 스쳐가는 듯하다. 역사와 시간이 그 바람처럼 호텔을 관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