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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적분할 때 주주 보호책 밝혀라"…자회사 상장 보류 등 우회 압박

[금융위 '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 개정]

자산 1兆이상 상장사에 의무 적용

소유구조 바뀔때 주주정책 자율공시

대선 후 신주인수권 대책 등 가시화

NHN·SK이노·KT 등 일부 기업은

주식배당 등 선제적 '주주 달래기'





앞으로 자산 1조 원 이상 상장사는 물적분할 시 주주보호 방안을 공시해야 한다. 상장사들이 알짜 사업부를 물적분할한 후 재상장하면서 손실을 입은 기존 주주의 반발이 거세지자 금융 당국에서 대응책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자회사의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등 보다 구속력이 있는 소액 주주 보호책이 나올 전망이다. 주주와 당국의 압력이 거세지자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일부 상장사들은 선제적으로 자회사 주식 배당 및 상장 보류 등의 대응책도 내놓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 가이드라인’을 개정한다고 6일 밝혔다. 분할·영업양수도·합병 등 기업의 소유 구조가 바뀔 때 주주 보호 정책을 명시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는 각 상장사가 지배구조 핵심 원칙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지를 공시하는 자료다. 지난해까지는 자산 규모 2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가 대상이었으나 올해부터 자산 규모 1조 원 이상으로 확대됐다. 해당 기업은 기존 175개사에서 265개사로 늘어날 전망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물적분할에 나서는 기업들은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소액 주주 의견 수렴, 반대 주주 권리 보호 등 자체적인 주주 보호 방안을 기술해야 한다. 공시하지 않을 경우 그 이유와 향후 계획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금융위는 최고경영자(CEO) 승계 정책의 주요 내용도 담도록 했다. 누가 승계 정책을 운영하는지, CEO 후보자는 어떻게 선정·관리하는지 등을 세세하게 담으라는 뜻이다. 개정안은 당장 올해 보고서 제출분부터 적용된다. 제출 시한은 5월 말이다.



금융위가 물적분할 관련 투자자 보호 정책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모회사의 핵심·성장 사업을 물적 분할해 자회사로 상장할 경우 소액 주주들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신설 자회사 주식을 받을 기회가 없는 데다 ‘중복 상장’으로 인해 주가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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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번 개정안은 당국이 구속력 있는 대책을 내놓기에 앞서 기업들이 스스로 주주 보호방안을 내놓도록 유도하는 자율 규제의 성격이 강하다. 업계에선 오는 9일 대선이 끝나는 대로 정부가 본격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모두 물적 분할 후 재상장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놨다. 이 후보는 “쪼개기 상장을 금지하겠다”고 했고 윤 후보는 “기존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일부 부여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치권과 금융투자업계에선 신주인수권·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물적분할 후 재상장 금지 등이 근본적 대책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를 위해선 모두 상법·자본시장법 개정이 필요해 실제 제도 도입 및 시행까지 상당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금융위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강구하는 한편 회사와 주주 간에 자율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시행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대통령 선거 직전에 물적분할과 같이 ‘뜨거운 감자’를 당국이 단독으로 손질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이번 가이드라인이 나오기 전부터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NHN(181710)은 오는 29일 주주총회에서 분할 상장 자회사의 주식을 기존 주주에게 현물 배당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물적분할한 자회사를 상장할 때는 주주총회 특별 결의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NHN은 클라우드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하면서 주가가 30% 가량 급락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096770)은 지난해 9월 정관을 바꿔 자회사 주식 배당이 가능토록 근거를 마련했다. SK온 물적분할 논란을 의식한 조치였다. KT(030200)는 지난달 현물 출자 방식으로 클라우드 법인을 설립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물적 분할’이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우회로를 택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KT가 클라우드 법인의 지분을 100% 보유하는 건 물적 분할이나 현물 출자나 똑같기 때문이다.

물적분할을 추진했던 다른 상장사들도 자체적으로 소액주주 보호방안을 내놔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콘텐츠 제작 부문 물적분할을 추진했던 CJ ENM은 이르면 이달 중 자회사 설립에 대한 방안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물적분할 방침을 밝힌 만도, LS일렉트릭, 세아베스틸도 주주 보호 방안을 내놔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회사인 SSG닷컴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 이마트 역시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자율적이고 선언적인 주주보호 방안을 넘어 구속력 있는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예컨대 회사가 자회사의 현물 배당을 약속했지만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당 0.01주를 현물 배당하기로 결정했다면 100주는 갖고 있어야 1주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론 모회사와 자회사를 함께 상장하는 데에서 시작된 문제”며 “자회사 상장을 아예 안 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며 모회사 소액 주주 불안을 줄이는 차원에서 자회사의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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