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말 평소 이용하는 주유소에 들어가다 ‘경유 1610원’이라고 붙어 있는 안내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1200원대에 주유를 하던 때가 불과 1년여 전인데 가득 넣어 5만 원이면 충분하던 기름값은 이제 6만 원을 넘어 7만 원에 가까워졌다. 비단 경유뿐일까. 커피값도 오르고, 소주값도 올랐다. 이제 ‘인플레이션’이란 단어는 누구나 일상생활 곳곳에서 체감할 수 있는 현실이 됐다.
경제는 그물망처럼 엮여 있어서 한 가지 품목이 오르면 반드시 다른 품목에도 영향을 주고, 한 분야가 가격 상승으로 고통받으면 그 피해는 여러 분야로 뻗어간다. 소주값이 오르니 애먼 식당 사장님들이 항의를 받는 것처럼 말이다.
경유값도 마찬가지다. 이는 운전자들에게도 부담이지만 건설 원가 상승의 핵심 요인이 된다. 포크레인·크레인 등 건설 장비는 대부분 경유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에서는 유가를 인건비와 함께 공사비 변동의 2대 핵심 요인으로 꼽고 있다. 최근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115달러 안팎으로 지난 2008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한 만큼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건설 현장의 공사비 상승 압박은 커지고 있는 셈이다.
유가가 아니더라도 건설 현장은 유례없는 원자재가 상승으로 신음하고 있다. 철근 원료인 국제 고철 스크랩 가격은 13년 만에 톤당 60만 원을 넘어섰고 시멘트의 원료인 유연탄값도 1년 전과 비교해 30% 가까이 올랐다. 거푸집을 만드는 원자재인 알루미늄 국제값도, 목재 가격도 역대 최고치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한두 품목이 아니라 거의 전 품목에 걸쳐 가격이 오르는 것은 지난 30년간 없던 일”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도급으로 일감을 따는 골조공사 업체들이 2일 공사를 중단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나타나는 원자재 상승은 단순히 건설 업계의 이익이 줄어든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정부의 분양가 관리 기조와 맞물릴 경우 주택 공급 지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애초 4만 4000여 가구를 점치던 지난해 서울 아파트 분양 계획이 연말이 되자 불과 7000가구 수준에 마감된 것은 결국 분양가 관리 기조와 이에 반발하는 사업 시행 주체 간의 갈등이 주된 배경이다. 둔촌 주공 등 여러 조합은 여전히 분양가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와 내년의 서울 공급을 ‘스트레스 구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아파트 공급이 절실한 시기라는 점을 정부도 잘 알고 있다는 의미다. 다만 동시에 분양가 관리 정책을 완화하겠다는 제스처는 아직 없다. 수십 년 만의 공사비 급등에도 정부가 분양가를 누르는 데 집중한다면 이번 인플레이션은 유례없는 부동산 시장의 수급불균형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시장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유연한 정책 대응이 절실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