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13일만에 5000여명 첫 대피…러, 민간인 행렬에 무차별 공습

[사망자만 늘린 '인도주의 통로']

북동부 도시 수미서 폴타바 이동

러 공격에 어린이 등 20여명 숨져

침공 2주째 접어들며 피해 눈덩이

유엔 인권위 "민간인 510여명 사망"

우크라 떠난 난민도 200만명 넘어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인 마리우폴에서 8일(현지 시간) 한 3세 여아가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피란 버스에 올라 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인 마리우폴에서 8일(현지 시간) 한 3세 여아가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피란 버스에 올라 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수천 명이 ‘인도주의 통로(humanitarian corridor)’를 통해 대피했다.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지 13일 만에 처음으로 이뤄진 민간인 대피다. 그러나 민간인 대피 행렬에도 러시아 군의 공습이 이어져 어린이를 포함한 수십 명이 사망하는 등 온전한 대피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유엔은 개전 이후 현재까지 우크라이나에서 470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실제 숫자는 이를 훨씬 능가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런 민간인 피해와 관계없이 우크라이나 군을 더 강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8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북동부 도시인 수미에서 민간인 약 5000명이 러시아 군에 포위된 도시를 탈출했다. 이 가운데는 인도와 중국·요르단 등 출신 외국인 720여 명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버스 등에 탑승해 수미에서 150㎞가량 떨어진 또 다른 북동부 도시 폴타바로 이동했다. 수미에서는 이튿날에도 대피 행렬이 이어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9일 오전 9시부터 12시간 동안 휴전을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피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이 지난 7일 벨라루스에서 연 3차 회담에서 인도주의적 통로 확보와 이를 통한 민간인 대피에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외신들은 민간인 대피가 위험천만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군은 수미에서 대피를 위해 대기 중이던 민간인 행렬을 향해 공습을 퍼부어 어린이 2명을 포함해 최소 20여 명이 사망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3일 열린 2차 회담에서도 민간인 대피를 합의했지만 러시아 군은 이후 대피로에 지뢰까지 매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당초 수미를 포함해 수도인 키이우와 북부 체르느히우, 제2 도시인 하르키우, 남부 마리우폴도 민간인 대피 대상지였으나 실제 대피가 이뤄진 곳은 수미가 유일했다.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수미에서의 대피만 승인했다”고 주장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민간인을 (러시아 우호국인) 벨라루스 영토로 이동시키려 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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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이 2주째를 향해 가면서 우크라이나에서 무고한 민간인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하르키우에서 러시아 군의 포격으로 민간인 약 3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현지 경찰은 전했다. 체르느히우에서도 지뢰가 터져 민간인 6명이 숨졌다.

어린이 사망자 역시 속출하고 있다. 영국 타임스는 지난달 28일 키이우 북쪽 시베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10세 소녀인 아나스타샤 스톨루크가 술 취한 러시아 군이 난사한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러시아 군은 딸의 시신을 마을 묘지에 안장하려는 것도 막았다”며 “결국 집 마당에 딸의 시신을 묻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또 마리우폴에서는 6세 여아가 포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탈수로 사망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마리우폴은 러시아 군의 무차별 폭격에 수도와 난방·전력이 끊긴 상태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러시아 군에 의해 숨진 아이들의 사례를 담은 공개 서한을 각국 언론에 발송했다. 그는 “이번 침공에서 가장 무섭고 파괴적인 것은 어린이 사상자”라고 했다.

유엔도 10만 명이 넘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여전히 우크라이나 내에 방치돼 있다며 이들에 대한 신속한 구조를 요구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유엔 인권사무소에 따르면 개전 이후 현재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516명이 사망했고 908명이 부상을 당했다. 사망자 중에는 어린이 37명도 포함됐다. 인권사무소 측은 이는 확인된 사례만 집계한 것일 뿐 실제 사상자 수는 이보다 많을 것이 분명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재난구조 당국은 2일 이미 2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러시아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 대표는 러시아 침공 이후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를 떠난 난민이 이날 현재 200만 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필리포 그란디 UNHCR 대표는 “유럽에서 이처럼 빠른 속도로 난민 수가 증가하는 것은 2차 대전 이후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민간인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8일 의회에서 “앞으로 몇 주가 매우 험악한(ugly) 상황이 될 것”이라며 “푸틴은 (우크라이나 점령 지연에) 화가 난 상태다. 민간인 사상에 아랑곳 않고 공격을 밀어붙일 것”이라고 했다.

한편 8일 열릴 예정이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4차 회담은 아직 개최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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