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대통령 윤석열]썩은 권력 도려내던 강골 검사…정치 신인 대통령 첫 역사썼다

윤기중·최정자 전 교수 교육자 집안 태어나

어릴 때부터 보인 집념, 9수 끝에 사시 합격

수사 ‘원칙주의자’ 朴 땐 권력 수사하다 좌천

최순실·조국 사태, 두 개의 수사로 대권 반열

특유의 강공·맷집 경선·원팀·네거티브 극복

첫 검찰총장 출신·0선 정치인 대통령 역사 써

윤석열 당선인의 대학 시절. 1960년 서울 출생인 윤 당선인은 서울 충암중과 충암고를 거쳐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사진 제공=국민의힘윤석열 당선인의 대학 시절. 1960년 서울 출생인 윤 당선인은 서울 충암중과 충암고를 거쳐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사진 제공=국민의힘




‘국민이 부른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정치인으로서 스스로 선택한 자신의 정체성이다. 그는 이 여덟 자를 들고 대선 후보로 나서 당당히 당선됐다. 당선 자체로 역사를 썼다. 헌정 사상 첫 전 정부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 ‘0선’ 대통령이 됐다. 윤 당선인은 정치를 선언한 지 9개월,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에 입당한 뒤 8개월 만에 이 모든 역사를 기록했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의 유년시절. 1960년 서울에서 출생한 윤 당선인은 윤기중 전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정자 이화여대 교수 슬하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서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사진 제공=국민의힘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의 유년시절. 1960년 서울에서 출생한 윤 당선인은 윤기중 전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정자 이화여대 교수 슬하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서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사진 제공=국민의힘


윤 당선인은 1960년 서울 출생으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정자 전 이화여대 교수 사이에서 태어났다. 교육자 집안에서 자란 그는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며 그는 ‘강골’로 성장했다. 사법 고시에서 여덟 번을 떨어졌지만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법조인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9수 만에 사법 고시를 통과하고 검사의 길을 걸었다.

윤석열 고등학교 시절./사잔=국민의힘윤석열 고등학교 시절./사잔=국민의힘


윤석열 당선인의 사법연수원 시절. 윤 당선인이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사법 고시 시험에 아홉 번 도전한 끝에 합격하고 교육을 받은 사법연수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국민의힘윤석열 당선인의 사법연수원 시절. 윤 당선인이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사법 고시 시험에 아홉 번 도전한 끝에 합격하고 교육을 받은 사법연수원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국민의힘



윤 당선인은 검사로서 승승장구했다. ‘원칙주의’를 앞세워 권력 수사를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불법 대선 자금 의혹’ 수사에 뛰어들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당시 그늘막 실세를 자처하던 강금원 창신섬유 대표를 구속했다. 그의 칼날은 거침이 없었다. 과거 비자금 사태로 구속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도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이 수사 때 재계 총수의 구속에 부담을 느낀 검찰총장을 직접 찾아가 사직서를 내밀며 수사를 관철시켰다. 2011년에는 부산저축은행 사태 수사를 맡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권력을 도려내며 그는 2010년 대검 중수2과장, 2011년 중수1과장, 2012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치며 검찰 내에서 꽃길을 걸었다. 2012년에는 띠동갑인 김건희 씨와 늦깎이 결혼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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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윤 당선인이 전 국민에게 이름을 각인시킨 사건은 그가 고난을 겪었을 때다. 그는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터진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 수사로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에게 칼을 겨눴고 권력은 그를 좌천시켰다. 이 사건으로 국정감사장에 나온 그는 검찰 상부의 외압을 실토하며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한마디는 대선에서도 윤 당선인이 ‘오직 국가와 국민·헌법에 충성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2016년 말 그는 ‘최순실 게이트’ 특검팀 수사팀장으로 3년의 좌천 끝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정권을 교체한 문재인 정부는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윤 당선인은 문재인 정부에서 중앙지검장에 오르고 2019년 7월에는 무려 다섯 기수를 뛰어넘어 검찰총장에 파격 승진했다.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지난해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지난해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 출근해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역설적이게도 검찰총장에 오른 그가 칼을 겨눈 쪽은 권력의 실세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이를 두고 그는 당시 “저도 인간이라 번민을 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검찰이 권력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야 정부가 성공한다는 그의 원칙은 변함이 없었다. 조국 수사로 그는 문재인 정부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어서 임명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수사 배제와 징계로 그에 대한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민심은 요동쳤다. 민심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인 그를 야권 대선 주자의 반열에 올렸다. 지난해 3월 검찰총장 직무 정지라는 사상 초유의 징계 사태가 벌어지자 그는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는 지켜보기 어렵다”며 사퇴하고 정치의 들판에 몸을 던졌다.

6월 29일 그는 윤봉길기념관에서 정치 선언을 했다.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여의도 문법을 모르는 그의 9개월간의 짧은 정치 여정은 서툴렀다. 7월 ‘기습 입당’을 두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충돌했다. 경선 과정에서는 정책 비전 부족으로 당의 고참 후보들에게 난타를 당했다. 이어서 터진 배우자의 허위 학력 문제는 정치생명을 끊는 수준의 치명상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진 집념, 수많은 고초에도 버틴 강골 기질과 맷집으로 이를 버텨냈다. 배우자 문제는 국민에게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다. 또 공약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진정성, 무너진 시장경제를 바로 세워 경제를 살리겠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민심을 얻었다. 그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를 찾아가 “나를 믿어달라”는 한마디로 역사상 첫 중도·보수 진영 단일화라는 드라마를 써냈다. 윤 당선인은 이제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으로 자신을 부른 국민께 충성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국민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 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꽃다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 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꽃다발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구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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