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과학기술, 저성장 탈출의 키…차기 정부 핵심 어젠다 돼야 [윤석열 시대]

[이런 나라를 만들자]

< 1 > 성장엔진 부스터샷을 켜라-기술력에 달린 韓경제

글로벌 기술패권 전쟁 격화에

AI·바이오·우주 등 손 놓다간

G5 도약은커녕 G10도 위태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재정립

美처럼 ‘도전적 연구’ 나서야





우리나라는 잠재성장률이 오는 2030~2060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 최저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만큼 차기 정부는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와 주요 5개국(G5) 도약의 토대를 만드는 게 핵심 과제다. 여기에 미중 등 글로벌 과학기술 패권 전쟁이 격화되고 있고 감염병 대처와 탄소 중립의 시대적 과제도 만만치 않다.



과학기술계와 기업들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포함한 차기 정권은 강력한 의지를 갖고 과학기술을 국가 경영의 핵심 어젠다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인공지능(AI)·바이오·우주 등 미래 먹거리를 키우는 등 성장 엔진에 ‘부스터샷 로켓’을 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청와대와 내각에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를 확고히 하고 과학기술 정책에서 전문가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 기업 연구개발(R&D)의 대혁신에 나서 기업가정신을 키우는 것도 주요 과제로 꼽았다. 겉돌고 있는 산학연 협력 체제의 실질적인 가동과 특허 수익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20대 대선이 끝난 10일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은 차기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에 대해 “인구 절벽과 국가 채무 증가 등 잠재성장률 저하 추세가 가파르지 않느냐”며 “차기 정부 임기 중 과학기술 비전과 전략을 잘 가다듬어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 달러 시대로 도약해 G5 진입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AI·바이오·우주·양자기술·에너지 등 선도형 G5 프로젝트 추진과 국가 R&D 시스템의 대혁신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재산권(IP) 보호 강화, 규제 혁파, 초중고 수학·과학·AI 교육 확대와 대학의 기업가정신 고취도 중요한 과제다.



차기 정부가 ‘과학기술 대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G5 도약의 토대를 쌓기는커녕 외려 주요 10개국(G10)도 지켜내지 못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적지 않다. 천세창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융합촉진 옴부즈만은 “미국의 견제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일정 부분 브레이크가 걸리기는 했지만 우리가 과학기술을 적극 키우지 않으면 미중 등에 의해 기술 속국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신성철 전 KAIST 총장도 “차기 정부는 과학기술 중심의 국정 운영을 하고 과학에는 여야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정권이 바뀌더라도 과학기술 분야 주요 기관장을 물갈이 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G5로 가려면 추격형에서 벗어나 선도형 국가로 탈바꿈해야 한다”며 “과학기술 컨트롤타워를 재정립하고 인터넷을 처음 개발한 미국 DARPA(미국 국방부 R&D 조직)처럼 도전적인 연구에 나서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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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윤 당선인도 이날 당선 인사를 통해 “첨단 기술 혁신을 대대적으로 지원해 과학기술 선도 국가로 발돋움하고, 초저성장의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를 다시 성장 궤도에 올려 놓겠다”고 밝혔으나 과학기술계와 기업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윤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과학기술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과 추진 전략을 내놓았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과 빅데이터를 토대로 한 ‘디지털 플랫폼 정부’ △대통령 직속 민관 과학기술위원회 신설 △정치와 과학의 분리와 탈원전 탈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연구 환경 조성과 미래 선도 연구에 대한 10년 이상 지원, 청년 과학인 도전과 기회의 장 마련을 약속했다. 하지만 과기 컨트롤타워 측면에서 민관 과학기술 자문회의는 현 정부의 국가과기자문회의와 차별성을 찾기 쉽지 않다. 염한웅 과기자문회의 부의장은 올 초 “자문회의에 의장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경우가 적었고 정책 자문을 하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고 토로했다. 다만 대통령직인수위원장으로 물망에 오르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과학기술 부총리를 공약한 바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윤지웅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대학의 R&D 혁신과 기술사업화, 기업가정신 함양, 의사과학자 양성에 나서야 한다”며 “출연연의 창의성을 가로막는 PBS(연구과제 경쟁 수주 시스템)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 당선인은 “탄소 중립의 로드맵과 시기별 감축 목표는 과학에 의해서 결정이 돼야 한다”며 원전 강화 방침을 밝혔으나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에 관해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욱 서울대 교수는 “현 정부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감축해 2050 탄소중립을 꾀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당선인이 얼마나 깊이 분석했는지 모르겠다”며 “원전도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간과하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와 국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우주정책의 경우에도 윤 당선인과 안 대표는 항공우주청 설립 공약을 내걸었으나 소속과 위상·권한에 대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여기에 설치 장소에 대해 윤 당선인은 경남 사천, 안 대표는 대전을 각각 꼽아 이견을 보였다.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라든지 부처 산하에 청을 만들게 되면 우주 선진국 진입과 우주산업 육성·발전, 미래 먹거리 창출에 대한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학이나 출연연은 물론 사회적으로 혁신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도 제기된다. 유태계 미국인인 조슈아 잭맨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미국·이스라엘·중국 등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연구 풍토가 있다”며 “한국은 대학이나 출연연에서 R&D 후츠파(저돌적인 담대함) 정신이 부족한데 R&D 시스템과 문화·생태계의 대혁신을 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남준 싱가포르 난양공대 교수는 “한국 대학은 양적 중심의 평가 제도에다 철밥통처럼 된 테뉴어(65세 정년 보장) 시스템 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며 "연구자들이 유행 따라 연구 주제를 바꾸지 않고도 연구비를 받을 수 있는 평가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국가전략기술 개발 과정에서 튼튼한 토대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차기 정부는 혁신의 가치가 유형자산의 가치와 기득권보다 더 존중받는 국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산학연정(産學硏政)이 함께 기술 혁신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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