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사람들이 뭘 좋아하지, 뭘 듣지’ 파악하고, 트렌드를 이끌던 걸 의식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작업에 진척이 없었어요. 결국 시간이 흘러도 음악이 좋으면 계속 사랑받으니까 그저 ‘좋은 음악을 만들자, 뭐가 유행이고 트렌드인지 생각하지 말자’고 했어요”(김준원)
2011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김준원, 강혁준의 듀오 밴드 글렌체크는 항상 트렌드를 선도하는 뮤지션이었다. ‘60’s Cardin’, ‘Paint It Gold’ 등의 곡은 젊음의 청량한 이미지를 사운드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들으며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들의 히트로 비주류(인디) 밴드 음악은 물론 K팝 아이돌 곡에서도 신디사이저(전자건반) 사운드가 들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다. 또한 음악과 영상, 패션 등 여러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아티스트들이 뭉쳐 예술작품을 내놓는 일이 지금이야 친숙하지만, 두 사람은 2010년대 초중반부터 이 흐름에 적극적이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을 오마주하는 공연을 한 적도 있고, 패션 디자이너 영상 그래픽 아티스트 등과 크루를 결성해 뮤직비디오를 비롯한 예술작품도 내놓았다.
하지만 최근 5년만의 새 앨범인 정규 3집 ‘블리치’(Bleach)를 낸 글렌체크는 더 이상 세간의 이런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듯 했다. 지난 8일 밴드의 작업실이 있는 성북동 인근 카페에서 서울경제와 만난 밴드의 보컬·기타 김준원은 “정해진 틀에 따라 곡을 만들기보다 나오는 그대로 유연하게 가려고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의 이런 방향성을 반영하듯, 새 앨범은 정규 1·2집의 신스팝, 일렉트로니카, 미니앨범(EP)에서 보여준 얼터너티브 R&B 등 과거 들려준 음악 스타일을 총망라한다. 더 나아가 힙합이나 90년대 풍의 모던 록처럼 이전까지 보여준 적 없는 음악도 들려준다. 앨범 제목을 영어로 표백제를 뜻하는 ‘Bleach’로 지은 것도 머릿속을 표백하고 새로운 걸 받아들여 음악적 경계 없는 다양한 곡을 들려주겠다는 맥락에서였다. 신디사이저·베이스 담당 강혁준은 “앨범 콘셉트를 짜는데 적잖이 고민하다 ‘앨범 속 장르의 콘셉트를 없애는 자체가 하나의 콘셉트가 될 수 있겠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지금껏 보여준 음악적 스펙트럼을 한 앨범에 담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트렌드에 신경 쓰지 않고 만들었다는 이번 앨범은 역설적으로 더욱 감각적으로 들린다. 한국대중음악상 같은 상에 대해서는 농담 삼아 “기왕 받는다면 ‘올해의 음반’이죠”라고 말한다.
글렌체크는 이번 앨범이 ‘부정적 생각을 떨쳐내기 위한 곡들의 모음’이라고 소개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쑥스럽고 못난 모습이지만 아름다운 음악적 표현으로 드러냄으로써 극복했다는 설명이다. 타이틀곡인 ‘Sins’만 해도 자신의 부끄러운 점에 상관없이 사랑하는 이를 향해 다가가겠다는 가사를 담고 있다. 김준원은 이번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두려움을 떨치자’는 이야기라며 “생각이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다, 좀 더 직관의 힘을 믿으며 흐름을 따라가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올해로 데뷔 10년을 넘기는 동안 앨범 3장밖에 못 내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지난 10년이 평생 음악을 하기 위한 토대를 다지는 기간이었다면, 이에 바탕한 앞으로의 활동이 더 기대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앨범 재킷 속 캐릭터를 이용해 대체불가능토큰(NFT)을 내고, 온라인을 통해 여러 콘텐츠도 선보이는 등 활발한 활동도 예고했다.
“튼튼한 기둥을 만들기 위해 적잖은 시간을 보냈어요. 30대에 들어서 3집 앨범을 냈는데, 앞으로를 더 기대하고 있어요”(김준원)
“이번 앨범으로 과거를 총정리하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생각해요. 이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공백기 없이 꾸준히 작업물을 내놓게 될 것 같아요”(강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