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靑 만기친람이 공직자 줄대기 초래…"주무장관에 힘 실어줘야"

[윤석열 시대-이런 나라를 만들자]

<6>관료 전문성 되살리자-공직사회 망치는 정치

靑 모든 정책 입김…이념 치우친 어공, 관료사회 짓눌러

결국 탈원전·소주성 등 정제되지 않은 정책들 쏟아져

"이참에 정치권에 줄서는 공직자 처벌규정 마련 필요"






“너 죽을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논의가 한창이던 지난 2018년 4월.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원전을 2년 반 더 가동하겠다고 보고한 담당 과장을 향해 이렇게 쏘아붙였다.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것인지 물었다’는 말을 전해 들은 직후였다. 백 장관은 “다시 보고하라”며 실무진을 강하게 질책했고 며칠 뒤 ‘즉시 가동 중단’을 골자로 한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당시 에너지 정책에 관여했던 서기관급 인사는 “‘못 하겠다’고 손을 뗀다 한들 달리지는 것은 없었을 것”이라며 “누가 내 자리에 오든 결국 윗선의 뜻대로 진행될 게 뻔해서 ‘총대를 멘다’는 심정으로 일했다”고 토로했다.



백운규 전 장관부터 김수현·장하성 전 정책실장,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까지. 문재인 정부 들어 이른 바 ‘폴리페서’로 대변되는 이들의 공직 진출이 줄을 이었다. 임기 전부터 집권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던 이들을 두고 정부는 국정 과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적임자라 소개했다. 관가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이들이 관료 사회의 복지부동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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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출 권력’이 중용한 인사가 주요 의사 결정을 좌우하면서 기대와 달리 각종 부작용만 양산됐다. 탈원전을 비롯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부동산 규제 등 정치권의 성긴 정책 구상이 정제되지 않은 채 시장에 그대로 노출된 탓이다. 정권과의 연줄을 기반 삼아 공직에 진출한 ‘어공(어쩌다 공무원)’들이 이념에 치우친 정책을 직접 만들고 “정책 효과와 절차를 따져봐야 한다”는 ‘늘공(늘 공무원)’들의 목소리를 찍어 누르면서 현장의 혼란은 가중됐다.

특히 이번 정부의 관료 불신은 대단했다. 무사안일·복지부동의 오명을 씌우고 개혁의 방해 집단으로 매도하기 일쑤였다. 2019년 이인영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공개회의에서 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르고 “정부 관료가 말을 듣지 않는다. 잠깐 틈을 주면 엉뚱한 짓을 하고···” 등의 속내를 터놓아 곤혹을 치러야 했다. 특히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선거 국면에서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미온적인 기획재정부를 겨냥해 ‘관료들이 선출 권력을 무시한다’는 식의 발언을 수시로 했다.

하지만 부동산·재정·세제 등의 정책은 축적된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다. 최인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인이나 교수 출신 중에서 기획재정부처럼 방대한 조직의 업무와 전문 지식을 꿰고 있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청문회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능력 부족 인사는 진작 걸러졌을 것”이라며 “신상 털기 수준으로 전락한 청문회 기능을 복원해 정책 역량을 공개 검증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가 모든 정책을 좌지우지하면 결국 관료 사회는 노골적으로 줄서기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된다. 경제 부처의 한 실무자는 “주무 장관이 주요 의사 결정에서 번번이 배제되는 것을 보게 되면 공무원들이 청와대 눈치만 살피지 않겠느냐”며 “이 경우 공직자들은 학연·지연을 매개로 권력의 끈을 잡는 데만 혈안이 돼 ‘실력파 중용’이라는 원칙도 오염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참에 정치 권력에 줄을 대려는 공직자에 대한 처벌 규정 등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젊은 경제 관료들의 사기 저하는 눈에 띌 정도다. 관료가 정치권의 들러리처럼 자리매김하면서 자부심이 사라진 지는 오래다. 경제 부처들의 위상 하락은 ‘중국산 고기’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까지 왔다. 저연차 사무관 및 고시생들 사이에서 ‘기피 부처’를 상징하는 해당 신조어는 중소벤처기업부·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일이 많고 야근만 잦은 부서라는 인식 속에 이들 부처에 대한 선호도 또한 크게 낮아진 것이다. 과거 최고 엘리트만 간다던 기재부는 ‘지원자 미달 사태’가 나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정치 권력이 공직 사회에 절대 우위에 선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아마추어식 국정 운영이 반복될 것”이라며 “전문적 지식과 능력을 갖춘 관료를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김우보 기자·세종=곽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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