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해외 칼럼] 중국이 러시아 경제를 도울 수 없는 이유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항공기 부품·고성능 반도체칩 등

러 필수 원자재·중간재 공급 불가

글로벌 소비자 반발·규제도 부담

베이징-모스크바간 거리 너무 멀고

경제 간극 커 '연합' 현실성 부족





필자가 자주 듣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중국이 러시아 경제를 위기에서 건져낼 대체 교역 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니, 그럴 수 없다. 먼저 경제 제재가 러시아에 안겨줄 충격부터 따져보자.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점은 서방 측, 특히 미국이 러시아의 최대 수출 종목인 오일과 가스의 판매를 금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설사 미국이 국제 원유 시장에서 거래되는 러시아산 오일의 수입을 중단한다 해도 그건 상징적인 제스처에 불과하다.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구입하는 원유량은 러시아 전체 생산량의 5%에 그친다.



대신 서방은 러시아의 세계 금융 시스템 접근을 거의 완벽하게 차단했다. 러시아 수출 업자들이 상품을 국외로 반출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수출 대금 결제가 사실상 불가능해 진 셈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러시아가 수입 대금을 지불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국제 교역에서 100달러 지폐로 채운 007가방을 들고 다니며 거래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제재 대상에서 제외된 합법적 거래마저 고사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추가적인 규제 조치의 가능성과 정치적 역풍을 우려하는 서방 기업들이 앞다퉈 “자체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중요한 문제일까. 러시아 엘리트들은 프라다 핸드백 없이 살 수 있지만 서방의 의약품은 그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어쨌거나 러시아의 전체 수입품 가운데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3분의 1 정도다. 나머지는 자본재와 중간재 및 원자재로 채워진다. 러시아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본재와 중간재·원자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러시아 경제가 멈춰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벌써 이 같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 국내 항공업은 부품과 정비 부족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러시아처럼 방대한 국가에서 국내 항공 운송 마비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중국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경제적 생명줄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네 가지 이유에서 아니라고 단언한다.

관련기사



첫째, 중국이 경제 대국이기는 하지만 서방에서 제작한 항공기 부품과 고성능 반도체 칩 등 러시아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공급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

둘째, 중국은 러시아 제재 조치에 동참하지 않고 있지만 세계경제에 깊숙이 통합돼 있는 상태다. 이는 서방의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은행과 기업 역시 “자체 제재” 조치를 취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러시아보다 훨씬 중요한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반발과 당국의 규제에 직면할 수 있다는 두려움 탓에 러시아와의 거래를 꺼리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셋째, 중국과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들이 국경을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의 주축은 우랄산맥 서쪽에 위치한 반면 중국 경제의 중심축은 동쪽 연안에 자리 잡고 있다. 베이징과 모스크바 사이의 거리는 3,500마일. 이처럼 긴 거리를 연결하는 실질적인 화물 운송 수단은 열차밖에 없지만 두 곳을 연결하는 몇 안 되는 노선은 이미 과부하가 걸린 상태다.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충분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러시아와 중국 경제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독일과 이탈리아 등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파시스트 국가들의 군사동맹을 연상시키는 새로운 독재국가들의 연대 가능성을 경고한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 그리 턱없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가상 연합체의 구성원으로 거론되는 두 국가의 현재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다.

푸틴은 소비에트 시절의 국위 회복을 꿈꾸고 있겠지만 현재로선ㄴ 중국을 따라잡기조차 힘들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와 대등한 규모였던 중국 경제는 이후 연속적인 고속 성장을 통해 지금은 러시아와의 격차를 열 배로 벌려 놓았다. 참고로 베를린과 로마가 연합했던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이탈리아의 2.5배에 불과했다. 경제 규모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현재 상황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네오파시스트 연합체의 탄생을 가상할 경우 러시아는 사실상 중국의 속국에 가까운 주니어 파트너의 위치에 머물 것이다. 아무래도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이 마음속에 담아둔 그림은 아닐 터이다. 또한 중국은 우크라이나 침공의 후폭풍으로부터 러시아를 보호해줄 수 없다. 중국이 러시아의 도발을 벌주려는 서방 국가들의 대열에 합류한다면 모스크바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분명 커질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동참 없이도 현재 진행 중인 제재는 충분히 강력해 보인다. 러시아는 푸틴의 과대망상 탓에 국민의 “돈과 피”로 호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