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IB&Deal

[시그널] 한샘 놓쳤던 정지선, 지누스 인수로 '체면치레'

현대百그룹 최대 M&A…SK네트웍스와 경쟁서 승리

패션·리빙 등 '라이프 케어' 분야 사업 강화 전략 지속

"한샘 인수 실패 만회하려다 '승자의 저주' 우려" 제기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사진제공=현대백화점그룹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사진제공=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현대백화점(069960)그룹 회장이 아마존에서 매트리스 판매로 명성을 쌓은 지누스(013890)를 그룹 사상 최고가에 인수하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 재등판했다. 현대백화점은 앞서 눈독을 들였던 가구업체 한샘을 IMM 프라이빗에쿼티(PE)와 롯데쇼핑 연합에 넘겨주며 분루를 삼켰지만 지누스 인수로 리빙·인테리어 시장 패권을 놓고 롯데·신세계와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확인했다.



현대백화점은 22일 이윤재 지누스 회장 등이 보유한 지누스 지분 30%를 7747억 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여기에 지누스의 인도네시아 제 3공장 신설을 위해 1200억 원 규모로 발행되는 신주를 인수하기로 했다. 현대백화점이 총 8947억 원을 투입해 지누스를 사실상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지누스는 가구 및 매트리스를 온라인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다. 2006년 설립돼 미국,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 지역과 일본, 영국, 독일 등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특히 지누스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에서 매트리스 분야 판매 1위를 한 때 기록해 국내에서 주가를 높인 바 있다.

애초 지누스 인수는 SK네트웍스(001740)가 앞서갔다. 종합상사 (주)선경의 후신인 SK네트웍스는 SK매직과 SK렌터카를 인수하면서 렌탈 기반 홈케어 사업을 강화해 왔다. 온라인 기반 매트리스 판매 경쟁력을 가진 지누스를 추가로 인수하면 홈케어 부문을 강화할 수 있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최종 의사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회사 이사회가 지누스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 이윤재 지누스 회장이 매각 후에도 경영권 유지를 원했는데 SK네트웍스 경영진은 강하게 경영권도 매각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지누스가 아닌 SK네트웍스 차원에서 인수 시너지를 내고, 경영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 경영권 확보는 필수라고 봤다는 후문이다.



현대백화점은 지누스의 경영권을 인수했지만 이 회장을 2대 주주로 남기고 이사회 의장 자리도 넘기면서 인수를 성사시켰다. 이 회장 뿐 아니라 그간 지누스를 이끌어 온 임직원의 근속을 보장한다는 방침이다.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된 이 회장도 호응했다. 이 회장측이 SK네트웍스에 비해 현대백화점에 넘기는 지분율도 줄었지만 현대백화점도 그만큼 인수가격 부담을 낮출 수 있어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백화점은 지난해 한샘 인수를 적극 추진했지만 막판 IMM PE에 역전을 당하며 실망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IMM PE가 한샘 인수 후 전략적투자자로 롯데쇼핑을 맞이하면서 유통업계 빅3간 ‘리빙 대전’에서 열세에 처하게 됐다. 현대백화점은 계열사로 현대리바트를 두고 있어 한샘을 품으면 리빙·인테리어 부문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지만 눈 앞에서 ‘대어’를 놓쳐 정 회장이 경영진에 적잖이 화를 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선 정 회장이 절치부심 끝에 지누스를 품으면서 그룹의 중장기 경영 전략을 강화하게 됐다고 평가한다. 정 회장은 본업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기업들을 인수하며 그간 사업 경쟁력을 높여왔다.

국내 여성복 1위인 한섬(4200억 원)과 SK네트웍스 패션 부문(3000억 원)을 인수하면서 패션 업계의 강자로 단숨에 올라선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리바트(204억 원)와 현대L&C(3680억 원) 인수 등은 가구·인테리어 사업의 기반이 됐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20년 현대바이오랜드를 1209억 원에 인수하면서 뷰티·헬스케어 사업도 추가했다.

현대백화점은 2020년 현대HCN을 KT스카이라이프에 매각해 5201억 원을 확보하는 등 자금력이 충분했지만 최근 유통업계 경쟁사인 롯데·신세계가 활발하게 기업 M&A를 해온 것과 달리 조용한 행보를 이어왔다.

지난해 한샘 인수 실패의 후폭풍이긴 했지만 현대백화점이 지누스 인수에 적극 나서면서 기업가치에 비해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롯데쇼핑이 국내 가구·인테리어 업계 1위인 한샘 인수를 사모펀드와 함께 추진하면서 3000억원만 투입하며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된 때문이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이 그룹 유통망을 활용해 온라인 판매에 주력해온 지누스 매트리스의 판매를 늘릴 수 있고, 온라인 마케팅도 강화할 수 있겠지만 지누스 제품은 저가 상품군이 주력이어서 현대백화점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지누스 매트리스/사진제공=지누스지누스 매트리스/사진제공=지누스


최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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