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홍색 귀족의 검은 뒷거래

■레드 룰렛(데즈먼드 슘 지음, 알파미디어 펴냄)

덩샤오핑·장쩌민 자손·인척 등

中 장악한 공산당 엘리트들의

추악한 치부·이권 다툼 파헤쳐

習 부인 펑리위안과의 만남 등

'권력 이면' 소설보다 흥미진진





시진핑 국가 주석의 집권 이후 중국 현주소를 나타내는 키워드 중 하나는 ‘실종’이다. 과거 중국에서 실종은 인권변호사나 언론인 등 반체제 인사나 공산당내 정적 등에 한정됐다. 지금은 유명 연예인, 스포츠 스타, 인터폴 총재, 기업인 등으로 무차별 확산 추세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2020년 10월 중국 금융당국의 규제를 비판했다가 3개월간 자취를 감춘 뒤 경영에서 거의 손을 떼야 했다. 법적 절차를 받거나 가족에게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공산당에 밉보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간다.’ 시진핑 공포 정치의 한 단면이다.



신간 ‘레드 룰렛’은 1949년 권력을 장악한 공산당 엘리트 가문의 후손, 이른바 ‘홍색 귀족’들의 추악한 치부와 당내 권력다툼을 폭로한다. 덩샤오핑·장쩌민 등의 자손, 친인척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며 이들이 기득권과 부를 어떻게 나눠먹는지, 중국 사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책은 저자 데즈먼드 슘의 전 부인 휘트니 단의 실종으로 시작한다. 4년간 행방이 묘연했던 단은 책을 내기 며칠 전 슘에게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출간을 포기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저자는 1968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유년기를 보낸 뒤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1997년 베이징으로 가서 출세와 사업 기회를 모색하다 자신처럼 야망이 가득 찬 단을 만난다. 남루한 집안의 시골 출신인 단은 특유의 사교 능력으로 핵심 권력자들과 ‘꽌시’를 맺으며 성공 가도를 달린다. 특히 원자바오 총리의 부인 장페이리의 욕망을 ‘악어 이빨을 청소하는 물고기처럼’ 채워주며 딸과 같은 관계를 이어간다.

관련기사



이들 부부는 장페이리와 함께 중국원양운수집단(COSOC)이 보유 중이던 핑안보험 지분 일부를 인수해 초기 투자액의 26배인 3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들은 이 자금과 다른 연줄을 이용해 베이징 수도국제공항에 거대 물류 시설을 개발하고 베이징 시내 호텔과 비즈니스센터 빌딩을 완공한다. 단이 실종되기 전 그들의 순재산은 수십억 달러에 달했다. 이들은 홍색 귀족들과 함께 개인 제트기를 전세 내 유럽 여행을 다니며 명품 쇼핑, 도박 등으로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다. 한끼 저녁 자리에서 마신 와인 가격만 10만 달러에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시진핑이 부패 청산을 빙자한 정적 소탕을 본격화하고 극좌 바람이 불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결국 시진핑은 덩샤오핑 이후 관행이었던 집단지도체제를 무너뜨리며 마오쩌둥과 같은 1인 숭배 체제를 만들었다. 중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던 민간 기업가들은 서구 사상과 내통하는 ‘제5열’로 낙인 찍혔고 모든 기업은 국가를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도록 강요당했다. 인터넷 대기업 텐센트의 마화텅 등 기업인들은 장부상으로만 막대한 부를 가졌을 뿐 자본 통제권은 전적으로 공산당이 행사했다. 언론자유, 사법 독립, 개방 등 서구적 가치는 중국에 재앙을 몰고 올 전염병에 불과했다.

이 와중에 2012년 10월 뉴욕타임스(NYT)가 원자바오 일가의 재산이 30억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기사 중간에 단의 이름을 언급한 게 이들 부부에게 결정타였다. 이미 같은 해 6월 블룸버그통신이 시진핑 당시 부주석 일가가 막대한 자산을 축적했다는 사실을 보도한 상황이었다. 당 지도부는 서구의 공격으로 간주해 똘똘 뭉쳤고 원 총리 가족들을 보호했다. 반면 ‘장 이모’라고 부르던 장페이리의 외면 속에 단은 동료 3명과 함께 갑자기 사라지고 말았다.

저자는 최근 중국 사회 변화는 시진핑이 가속화했을 뿐 2008년 후진타오 당 주석의 2기 정부 때부터 이미 예고된 ‘공산주의 체제의 본질인 특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1970년대말 공산당이 자유시장 경제를 도입한 이유는 당시 국가 파산 사태를 막기 위한 일시적인 필요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위기에서 벗어나자 당이 사회, 자본, 사람 등 모든 것을 장악해야 한다는 본색을 드러냈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슘은 “당이 기업인들에게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것은 적들을 분열시켜 무력화하려는 레인주의 전술에 불과하다”며 “경제 발전, 해외 투자, 홍콩 자유 제한 등에 더 이상 필요 없어지면 가차 없이 당의 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책은 중국 권력 내부자의 증언답게 시진핑과 부인 펑리위안과의 만남 등 여러 비화도 들려준다. 가령 시진핑이 최대 정적이었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 서기나 보시라이 우군이었던 저우융캉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제거를 둘러싼 뒷얘기나 후진타오 전 주석이 만든 계파 ‘공청단’을 해체하는 과정은 긴박감마저 느껴진다. 차기 상무위원으로 유력하던 링지화 전 통일전선부장이나 시진핑 이후 차기 국가 주석 물망에 오르던 쑨청차이 전 충칭시 서기 숙청도 ‘시황제’ 등극을 위한 포석이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미래 중국 사회의 향방이나 공산당 노선을 알고 싶다면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1만6800원.


최형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