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파묵 "전염병 앞의 인간영혼·권력속성에 주목"

■'페스트의 밤' 한국 출간 기념 인터뷰

전염병 소설 40년 고민…방역 저항하는 사람들서 모티브

공포 빠진 대중 소문 만들고 방관하던 권력은 권위주의화

팬데믹 이후 정서적 교류의 근간인 장소·접촉 줄어들 것





“지난 40여년간 전염병을 소재로 한 소설을 고민한 이유는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형이상학적인 것을 사고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제 소설은 페스트 창궐 당시 인간 영혼의 반응,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터키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사진)은 신간 소설 ‘페스트의 밤’(민음사 펴냄) 한국 출간을 기념해 최근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동양의 운명주의, 방역과 격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저의 관심을 끌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인터뷰는 국내 언론사 기자들의 서면 질의를 취합해 이난아 한국외대 터키어과 교수가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페스트의 밤’은 1901년 오스만 제국 하의 민게르라는 가상의 섬에 페스트가 번지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전염병은 공포와 권력의 오만, 종교적·정치적 분열이라는 발화 장치를 거쳐 민게르섬을 혁명과 독립으로 몰고 간다. 파묵은 최근 10년간 소설 집필을 위해 20세기말과 21세기 초 페스트 발병 때 영국 의사들의 식민지 상황 보고서, 터키 주지사들의 정치 회고록 등 광범위한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또 그는 오스만 제국 말기의 풍경을 슬픈 시선으로 되돌아보면서 터키 민족주의의 뿌리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진다. 책에서 제국 통치자들은 서구 제국주의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들의 안위만 챙긴 채 민게르섬 주민들을 외면한다. 즉 파묵은 전염병에 대한 인간의 반응과 더불어 페스트가 촉발한 민족주의 부상, 제국의 붕괴 후 작은 국가들의 탄생 등과 같은 사회적 변화를 얘기하고자 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이 신간 소설 ‘페스트의 밤’ 출간(민음사)을 기념해 최근 온라인 인터뷰를 갖고 있다./사진제공=민음사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이 신간 소설 ‘페스트의 밤’ 출간(민음사)을 기념해 최근 온라인 인터뷰를 갖고 있다./사진제공=민음사



파묵은 2022년 현실과 100년전 팬더믹 때와 비슷한 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권력의 속성을 들었다. 파묵은 “대통령, 총리 등 권력자들은 ‘뭐 감기에 걸려 죽었겠지’라고 말하면서 전염병을 부인하다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현재의 편한 상태, 혹은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후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 기독교인이나 무슬림 등이 전염병을 퍼뜨렸다고 뒷담화를 시작한다. 정부는 근거 없는 소문은 해결하지 못한 채 점차 권위주의적으로 변하면서 강경 대응으로 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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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금은 과거와 달리 많은 전염병 정보를 갖고 있지만 이 역시 또 다른 공포의 원인이 된다. 파묵은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시체를 가득 실은 트럭이 지나가고 인도에서 공원에 가득 찬 시체를 태우는 장면을 보게 된다”며 “과거에는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했다면 지금은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프랑스의 소설가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와 차별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파묵은 “‘페스트’는 나치들이 프랑스를 점령한 것을 묘사한 정치적 알레고리(Allegory·추상적 관념을 다른 구체적인 사물로 비유해 표현하는 방법)인 반면 저의 소설은 사실주의적 팬데믹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팬데믹 이후 인류의 삶은 어떻게 바뀔까. 파묵은 “먼저 건축적인 측면에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방, 우리가 서로 가깝게 붙어 있어야 하는 작은 장소들, 식당들, 창문이 없는 곳은 그 중요성이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와 화상회의를 하는 데서 보듯 정서적 교류의 근간이던 접촉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집필 중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가 퍼지면서 소설 내용과 현실이 닮아 오히려 소설의 재미를 반감시킬까 우려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뉴욕타임스(NYT)’ 등에 지난 3년 반동안 페스트와 격리, 방역 등에 전염병을 소재로 소설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고 내용을 부분 수정했다는 뒷얘기를 털어놓기도 했다.

파묵은 소설 지망생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자신의 창작 전략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우선 챕터별로 나누어 쓰다가 막히면 다른 챕터로 옮겨가 쓰고, 그러면 막혔던 부분도 저절로 풀린다고 한다. 또 어느 날 자신이 더 내적이고 우울한 마음 상태가 되면 소설의 시적인 부분을 쓴다고 했다. 반대로 합리적인 마음 상태라면 이성적인 부분을 쓴다. 그러려면 초기 구상 단계부터 계획을 많이 세우고 이야기를 충분히 전개시켜 놔야 한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파묵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한국을 두 번 방문했는데 다시 가서 박물관들을 방문하고 거닐고 싶다”며 “한국 독자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인사말을 전했다.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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