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청론직설] “尹정부, 무너진 ‘재정 규율’ 바로세우고 부채 통합관리 제도 구축해야’

◆전영준 차기 한국재정학회장

국가부채 수준 과소 평가…‘재정 상태 양호’ 도식 버려야

나랏빚 통제 방법 등 구체적 명시, 재정준칙 수술 필요

“50조 손실 보상안 전부 못 지켜” 국민에 이해 구해야

세입 확대 위해 부가가치세 인상 尹 임기 내 논의 필요 ?

다음 달 1일 한국재정학회장에 취임하는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가 2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는 무너진 재정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기자다음 달 1일 한국재정학회장에 취임하는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가 2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는 무너진 재정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승현기자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나랏빚은 시쳇말로 고삐 풀린 듯 늘었다. 윤석열 정부는 1000조 원 넘는 국가 채무를 떠안고 출발해야 한다. 정치인은 물론 관료들까지 빚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 다음 달 1일 한국재정학회장에 취임하는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2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부채의 절대 규모도 문제이지만 ‘재정의 규율’이 무너진 게 더욱 뼈아프다”며 “차기 정부는 재정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나라의 빚은 연금 부채 등을 감안할 때 과소 평가돼 있다”며 “이제는 ‘재정 상태가 양호하다’는 도식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대통령과 내각 전체가 재정 건전성에 대한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차기 정부는 재정 규율을 실행하고 부처 전체의 재정을 통합 관리하기 위한 제도적 체계와 틀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코로나19 손실 50조 원 보상안에 대해 “재정 상황 등을 고려해 전부 지키기 힘들다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재정 건전성을 위해 세금을 좀 더 걷어야 한다”며 “지금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힘들지만 윤석열 정부 임기 안에 부가가치세 인상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우리 재정 상태를 냉정하게 분석한다면.

△우리의 부채 수준이 외국에 비해 지나치게 과소 평가돼 있다. 중앙·지방정부 부채인 국가 채무(D1)와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포함한 일반 정부 부채(D2)에 비금융 공기업 부채를 더한 것이 D3이고 연금 충당 부채를 포함한 개념이 D4다. 정부는 D1 또는 D2만 갖고 국제 비교를 하며 부채 규모가 작다고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눈에 띄지 않는 공기업 부채가 너무 빠르게 늘고 있다. 과거에는 D2로 가능했지만 최근 수치 변화를 보면 D3까지 관리해야 한다. 여기에 호전될 가능성이 없는 각종 연금 부채들이 가까운 미래에 ‘눈에 보이는 부채’로 잡힐 것이다. 우리처럼 인구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나라가 없다. 우리에게 닥칠 지출 수요는 어느 나라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이 될 것이다. 지금도 불안하지만 앞으로 더 힘들 것이다. 실상이 이런데 D2만으로 재정이 괜찮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재정 폭탄의 위험을 간과하면 곤란하다.

-정치권 다수는 나랏빚에 무감각하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 집안 돈은 아끼며 공공 자금을 함부로 쓰고 용처도 쉽게 결정한다. 재정 건전성이 다른 나라보다 양호하다는 도식을 이제 버려야 한다. 재정 정책은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정부 수입과 지출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금의 재정 정책 기조는 미래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재정 정책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초과 세수는 황당할 정도였다.

△세수 예측이 틀린 것은 세수에 미치는 각종 요인 파악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초과 세수 자체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용처다. 초과됐다고 갑자기 생긴 꿀단지로 생각하면 안 된다. 초과 세수가 추세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일시적 발생인데 다 써버리면 안 된다. 세수는 예상보다 덜 걷힐 때도 있기 때문에 아껴야 한다.

-재정준칙도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것은 무늬만 재정준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새 정부가 재정준칙을 다시 만들기 바란다. 준칙을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정부가 재량권을 스스로 끊는다는 의미다. 새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준칙을 수술해가기를 희망한다. 재정 적자 수준을 관리하고 국가 부채를 통제하는 방법 등을 보다 세밀하게 명시해야 한다. 관리·감독의 역할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준칙을 예외 없이 적용할 수 있도록 엄격히 준수할 프로토콜(규약)이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준칙이 재정 유연성을 저해하거나 경기 변동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건전성이 더 중요하다. 새 정부는 재정의 규율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재정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결국 재정 규율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한데.



△대통령의 의지 아래 추진해야 하지만 이런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국회가 동참하고 훌륭한 관료를 등용해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료도 기획재정부 장관 혼자서는 안 된다. 스웨덴의 경우 재정에 문제가 생기면 장관들이 모여 서로 줄일 수 있는 것을 회의를 통해 담판한다. 일방적으로 줄이는 구조가 아니라 부처별로 조정한다. 부처 내 우선 순위가 높은 것은 지키고 떨어지는 것은 내놓으며 부처 전체로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우리도 이런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 제약이 있을 때 부처별로 양보하고 관리하는 체제다. 대통령과 내각이 건전성에 대한 소명 의식을 지녀야 한다.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구축해 실질적 제약을 받도록 해야 한다.

-윤 당선인이 대선 당시 소상공인·자영업자 손실 보상을 위한 50조 원 지원을 공약했다. 그대로 시행하면 재정 부담이 너무 크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약속을 전부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고백해야 한다. 상황을 꼼꼼하게 보니 알지 못한 재정 상황 등을 파악하게 됐고 불가피하게 그대로 실행하기 어렵게 됐다고 진솔하게 말하는 게 좋다. 이해하지 못하는 국민들도 있겠지만 설득 과정이 필요하다.



-대규모 지원에는 국채 추가 발행이 필요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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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출 구조 합리화를 최대한 선행하고 추가 국채 발행은 지양해야 한다. 빚을 안 낼 수는 없겠지만 무엇을 위해 내는지가 중요하다. 빚을 내 눈앞의 공약을 지키려는 것은 옳지 않다. 국가 지도자는 욕을 먹어도 재정 건전성을 지켜야 한다. 긴축 정책으로 금리가 오르는 점을 감안해 국채 관리를 더 타이트하게 해야 한다.

-지출에서 짚을 부분이 예비타당성 제도의 과도한 면제다.

△효과 없는 사업을 정치 논리로 벌리려는 것이다. 일본이 1990년대 지방 문화센터를 엄청나게 많이 건립한 것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쓰이지 않는 것이 태반이다. 비용만 들고 효과는 없는 재정 낭비 사례다. 당장 비용이 들어도 효과가 큰 사업이라면 재정 투입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예타 면제는 재정 부담도 초래하지만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킨다. 예타 결과를 조정한다거나 예타를 면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예타 결과가 좋지 않은데 굳이 사업을 강행한다면 이유를 설명하고 그 결정을 내린 사람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새는 돈을 막는 것도 관건이다.

△지출 뒤 사후 관리가 부족하다. 민간에 위탁했으면 사후 관리를 하고 적절하지 않으면 위탁 업체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너무 형식적이다. 특히 시민·환경단체에 대한 사후 관리가 부족하다. 시민단체가 재정 보조를 받고 정부 사업을 많이 위탁받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감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는 단체들도 있다.

-재정 건전성을 위해 증세를 고민해야 하는가.

△지출 낭비 요인을 줄이되 세금을 좀 더 걷는 것은 불가피하다. 부가가치세를 올려야 한다. 부가세는 기본세율 10%로 다른 나라보다 낮다. 문제는 형평성이다. 전 국민의 100%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공동 부담이 필요하다. 시기도 문제다.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상황에서는 무리가 있다. 그래도 새 대통령 임기 내에는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실행도 했으면 한다. 증세해서 살아남은 정권이 없다고 하지만 유능한 지도자는 인기 없는 정책을 관철할 줄 알아야 한다.

-전체 근로자 중 36.7%가 면세자인데 면세자를 줄이는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면세점을 인위적으로 조정하지 않아도 소득이 높아지면 면세자가 줄어든다. 더 좋은 것은 공제 등으로 면세자를 조금씩 줄이는 것이다. 기준점을 바꿔 저소득층으로부터 얼마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을지 봐야겠지만 소득 있는 사람은 소득세를 1만 원이라도 내도록 하는 게 타당하다. 우리나라는 고소득층의 소득세 부담이 외국에 비해 크다.



-새 화두로 떠오른 연금 개혁은 증세만큼 어렵다는 얘기가 있는데.

△좋아할 사람이 없다. 국민연금 급여는 더 이상 깎을 필요가 없다. 이미 많이 낮아졌다. 공무원연금은 좀 낮아져야 한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위험이 된다. 연금은 나이 들어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제도다. 취약 계층에 혜택을 줘야 하는 제도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국민연금 가입자 중 임시직의 가입률은 낮다. 제도의 수혜는 중산층 이상이 본다. 덜 주고 더 걷는 차원을 떠나 저소득층에 실질적으로 소득을 보장할 수 있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재정을 생각해 지급 규모를 고소득층에 대해 줄이고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늘리는 것이다.

-연금 개혁은 정권 초기에 해야 하지 않나.

△새 정부가 정권 초기에 힘이 있을 것 같지 않다. 거대 야당 때문이다. 대선 토론 과정에서 여야가 개혁에 합의했지만 실행은 다른 문제다. 실천과 관계 없이 개혁 방향 등에 대한 공론화는 필요하다. 그래도 2030세대의 정치 참여에서 희망을 보게 된다. 연금 제도 개혁의 혜택을 보게 되는 이들이 적극 동참하면 정치권도 개혁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He is

1964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경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과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쳐 2007년부터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재정학회의 ‘재정학 연구’ 편집위원장 등을 지냈으며 4월 1일 한국재정학회장에 취임한다. 기금평가단 평가위원, 대통령 자문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재정세제 전문위원, 사회보장위원회 재정통계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김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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