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반도체에 애정을 많이 보였다. “한미 동맹을 반도체 등 글로벌 (산업의) 혁신을 이끄는 동맹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 “요즘 전쟁은 총이 아닌 반도체가 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전쟁의 중심에 있는 반도체에 대해 산업적 관점을 넘어 국가의 명운이 달린 외교·안보적 측면으로도 접근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조세특례제한법을 또다시 개정해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 상향을 추진하는 데도 보수적 세제 정책으로는 반도체 지원에 각각 62조 원, 190조 원을 쏟아붓는 미국과 중국에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반영됐다.
29일 인수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메모리반도체는 언젠가 중국 등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며 “인수위 차원에서 시스템반도체 등 반도체 산업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한 컨틴전시플랜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인수위 관계자도 “업계에서 요구하는 세액공제율 향상, 반도체 클러스터 진입을 위한 환경 규제와 토지 보상 등 애로 사항을 해결하는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수위는 대표적 조세 지원책인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 세액공제 중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을 대폭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R&D 세액공제율은 대기업 30%, 중소기업 50%로 이미 선진국 수준이다. 업계는 현행 대기업 기준 6%의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을 최대 20%까지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인수위와 정부 부처 모두 “파격적인 주장이 아니다”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반도체 클러스터를 내세우며 반도체 정책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가져간 것은 높게 평가한다”면서도 “문재인 정부는 반도체 산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 세제 지원 등에 소극적이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국가 전략적으로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부처 관계자도 “업계에서 대기업의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을 20%까지 요구하는데 이는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40%와 비교해도 검토할 만한 수준”이라며 “업계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수위에서는 반도체 업계의 화두인 불소가스 저감을 하기 위해 인센티브나 R&D 지원 강화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관계자는 “반도체 업계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화두로 떠올랐다”며 “반도체 업계가 고민하는 불소가스 등 온실가스 저감을 촉진하기 위한 지원책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수위 구성만 봐도 반도체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책이 담길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인수위 정책을 총괄하는 추경호 기획조정분과 간사는 지난해 반도체 시설 투자의 세액공제율을 5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며 조세특례제한법을 발의했다.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경제2분과에서는 인텔 수석매니저를 지낸 유웅환 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 같은 반도체 지원책은 국가전략기술을 규정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통해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세액공제 등을 규정한 조세특례제한법은 지난해 개정됐다. 올해 상반기에 발표되는 2022년 세법개정안에는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 향상을 위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또다시 담길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반도체와 함께 국가전략기술로 묶인 배터리·백신 산업도 시설 투자 세액공제율 상향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인수위는 또 디스플레이를 국가전략기술로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디스플레이뿐 아니라 지능형 반도체, 데이터와 네트워크, 인공지능(AI) 등의 국가전략기술 지정을 요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업계의 요구를 청취하고 있다”면서도 “국가전략기술은 핵심 기술에만 적용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잘 들여다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