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러 제재 사이 '팽창 야욕'…'페트로 위안'으로 유로화도 넘본다

[우크라發 신화폐전쟁]

◆'통화굴기' 속도내는 中

印·사우디 등 원유거래 변경 검토

中, 위안화 국제 위상 높이기 액셀

스위프트 퇴출 러기업도 궤도 수정

주요국 '위안화 보유' 비중 급상승

국제결제는 3.2%로 유로화 추격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대러 제재는 양국 간 경제 교역을 더 늘리고 위안화의 국제화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블룸버그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대러 제재는 양국 간 경제 교역을 더 늘리고 위안화의 국제화 속도를 높일 수 있다. 블룸버그


올 들어 중국이 2016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작한 위안화 석유 결제 방안 협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사이가 벌어진 까닭도 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을 지켜본 중국 정부의 구애가 거셌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과 서방의 제재에 가로막혀 보유외환의 절반을 쓰지 못하는 러시아를 보며 미국과 달러화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화의 종말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간 새로운 화폐 전쟁을 불러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때 미국과의 무역 전쟁과 환율 조작국 지정으로 금융 패권의 중요성을 깨달은 중국은 일대일로 구축과 디지털위안화 활성화를 통해 위안화의 국제화를 꾸준히 추진해왔다. 달러화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하더라도 달러화 없이 필요한 국제무역을 할 수 있는 수준은 돼야 한다는 게 중국 정부의 속내다.



국제 정세는 중국에 유리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위안화의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리는 데 힘을 쏟아온 중국에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현재 인도는 서방의 제재로 갈 곳 잃은 러시아 석유를 20% 정도 할인된 가격에 들여오면서 위안화로 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하루 400~500만 배럴의 원유를 수출한 에너지 대국이다. 중국도 러시아산 석유를 들여올 확률이 높은데, 이 경우 위안화 결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하루 176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수출량의 25%다. 미 경제 방송 CNBC는 “인도가 값싼 러시아 석유를 사들이고 있고 다음 주문자는 중국이 될 수 있다”며 “2011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한했지만 중국이 각종 수단을 동원해 이란산 석유를 몰래 사들이는 것을 완전히 막지 못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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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달러 결제망에서 퇴출된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의 위안화 국제결제시스템(CIPS)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중국 정부에 대러 제재를 우회하는 방안을 제공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지만 모든 거래를 막는 것은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왕이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9일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대러 제재가 제3국의 정상적인 교역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금융 냉전’의 저자 제임스 포크는 최근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에 “미국과 유럽 제재 탓에 러시아 기업과 은행이 중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확실히 러시아는 앞으로 더 많은 위안화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위안화의 국제결제 비중을 더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1월 기준 위안화의 국제결제 비중은 3.20%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일본 엔화를 제치고 세계 4위(2.70%)의 국제결제 통화가 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비중이 0.5%포인트나 상승했다. 위안화가 엔화를 제친 것은 2015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주요국 보유외환에서 위안화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세계 주요국의 보유외환에서 달러화 비중은 73%에서 58%로 쪼그라들었다. 달러화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위안화(25%)와 나머지 기타 통화(75%)다.

다만 단기간 내 위안화가 달러화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축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국이 자본 유출을 허용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공산당 지도부가 이를 허용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월가의 전문가들도 향후 최소 수십 년은 위안화가 달러의 지위를 넘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글로벌 신냉전 구도는 중국이 위안화의 국제화를 추진해야 하는 동기가 될 수 있지만 미국과 서방의 견제가 심해지면서 반대로 국제화의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과 러시아 대 미국과 유럽의 경제 블록화는 위안화가 넘을 수 없는 근본적인 ‘벽’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디지털위안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기축통화 지위에 도전하고 단기적으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중동 등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축통화 지위를 넘보기보다는 무역과 첨단 기술, 군사적으로 경쟁하는 미국의 달러 패권에 흠집을 내고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에 주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위안화가 달러화에 도전할 수는 있지만 이를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서방국가와 거래하려는 이들은 서방의 통화가 필요할 것이며 이는 서방과 위안화 두 개의 결제통화가 공존할 수 있음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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