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달 새 전 세계 기업들의 자금 조달과 인수합병(M&A) 시장이 50조 원 이상 쪼그라들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인플레이션,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행보 등 온갖 악재가 관련 기업 활동에 직격탄이 됐다.
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한 달여 만에) 적어도 100여 개의 기업이 450억 달러(약 55조 원)에 달하는 기업공개(IPO), M&A, 채권 발행, 대출 등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고 보도했다.
우선 IPO 시장을 보면 2월 하순부터 현재까지 약 50개 기업이 IPO를 보류했다. 이 중 미국 기업이 약 30개에 이른다. 아시아와 유럽에서의 IPO 연기도 잇따랐다. 세계 최대 식재료 공급 업체인 올램인터내셔널은 시장가치가 171억 달러에 달하는 식품 부문을 영국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하려 했지만 연기했다. 중국의 다롄완다그룹도 쇼핑몰 부문을 홍콩 시장에 상장해 30억 달러를 조달하려 했지만 역시 중단했다.
M&A 시장도 타격을 받았다. 블룸버그는 1분기 전 세계 M&A 성사 규모가 1조 20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감소하며 2020년 3분기 이후 가장 적었다고 전했다. 2020년 코로나19 발발 이후 세계 각국이 돈을 풀면서 주식시장이 호황을 맞았고 이의 여파로 M&A 거래도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났지만 올 1분기 들어 성장세가 꺾인 것이다. 올해 초 마이크로소프트가 750억 달러를 들여 게임 개발사 블리자드를 인수하는 등 굵직한 거래는 있었지만 총거래 규모는 감소했다. 블룸버그는 “특히 유럽에서의 M&A가 38%나 줄며 지역별로 봤을 때 가장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자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도 대폭 줄었다. 전 세계 채권 발행액은 올 들어 14% 축소됐다. 유럽에서는 슬로바키아를 비롯해 8개 국가 혹은 기업이 50억 달러 규모의 채권 발행을 연기했다. 일본에서도 미쓰이스미토모건설·도호쿠전력 등 7개 기업이 8억 달러 규모의 국내 채권 발행 계획을 취소했다. 이 외에 기업의 대출과 자산유동화증권(ABS) 시장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캘러웨이골프는 9억 5000만 달러의 대출을 시장 상황을 이유로 보류했고 테슬라도 지난달 중순 10억 달러어치의 ABS 발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자금 조달과 M&A의 위축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인플레이션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공급망 붕괴 등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된 여파로 풀이된다. 주식을 거래소에 상장하고 채권을 발행해봤자 수요가 이전만 못할 것으로 보이자 일단 계획을 연기하고 후일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M&A의 경우 미국과 유럽 경쟁 당국의 깐깐한 기업결합 심사도 영향을 미쳤다. 일례로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기업의 독점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테크 기업부터 헬스케어 기업까지 M&A를 철저히 심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IPO·M&A 등을 주관했던 금융사들의 수익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블룸버그는 “금융사의 지난해 수수료 잔치가 올해는 기근으로 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금 조달과 M&A가 당분간 위축된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그리브스 랜스다운’의 수석시장분석가인 수재나 스트리터는 “IPO의 전부는 타이밍”이라며 “시장의 안정세가 찾아올 때까지 많은 IPO가 연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