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배척하지 않습니다. 배척하면 오히려 자신이 당한다는 것을 아는 존재지요. 새나 벌, 나비와 공존하는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벚꽃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것을 배척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것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협력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합니다.”
최근 발족한 ‘왕벚프로젝트 2050’에서 회장을 맡은 ‘나무 박사’ 신준환(66) 생명의숲 공동대표가 4일 수원 연무동 한 카페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간 건전한 교류를 위해서라도 우리 벚꽃을 먼저 알아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신 대표는 서울대 임학과를 졸업했으며 생태학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는 등 45년간 나무만 연구한 국내의 대표적인 ‘나무 학자’다. 2012년부터 2년간 국립수목원장을 지냈고 기후변화협약·생물다양성협약·사막화방지협약 등 각종 국제 대회에 한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하기도 했다. 2018년부터는 생명의숲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가 ‘왕벚프로젝트 2050’ 회장으로 취임한 것은 제주도와 전남 해남에 자생하는 한국 특산종 왕벚나무를 알리고 보급하기 위한 캠페인에 힘을 보태기 위해서다. 신 대표는 “우리 길거리에 서 있는 벚나무는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 일본에서 들여온 것들”이라며 “우리 나무가 있는데 굳이 아픈 역사를 담은 나무에 애착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4일부터 서울 여의도 윤중로를 시작으로 경남 하동 벚꽃십리길, 군항제가 열리는 김해 등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벚나무의 생태 조사에 나선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벚나무 중 왕벚나무는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게 목적이다.
그가 왕벚나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단순히 우리 것을 알리기 위함이 아니다. 진정한 목적은 왕벚나무를 통해 서로 적대시하는 문화를 없애자는 것이다. 그는 서로 배척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것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도 자신과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신 대표는 “우리는 우리 것을 찾고 일본도 일본 것을 찾는다면 서로 배척하지 않고 교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한일 관계의 미래도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에게 ‘배척하지 않는 삶’이란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는 화두로 이어진다. 나무가 때로는 장롱이 되고 때로는 식탁이 돼 인간 세계에 깊숙이 들어오듯이 서로가 서로와 연결돼 있기에 따로 떨어져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신 대표는 “이차원적 사고로만 보면 내가 보는 것만 옳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각자의 존재가 다른 세계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무궁무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며 “포용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위 ‘갑질’도 연결의 중요성을 모르는 탓에 등장한다고 본다. 절벽 위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덩치를 유지하고 살아남은 것은 뿌리의 곰팡이 균들이 수분과 양분을 잘 흡수하기 때문이듯이 인간 사회가 유지되는 것 역시 우두머리보다는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다하고 다른 세상과 연결하는 덕이라는 것이다. 신 대표는 “회사도, 은행도, 공공기관도 일반 직원이 세상에 나가 다른 곳과 연결시켜 주는 터미널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본다면 회사의 중심은 사장이 아닌 일반 직원”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지엽말단(枝葉末端) 예찬론을 펼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줄기가 중요시하고 곁가지나 지엽말단은 외면하지만 실제로 나무를 보면 정반대라고 그는 설명했다. 신 대표가 볼 때 줄기를 중시하는 것은 왕족 중심이나 제왕적 사고의 산물일 뿐이다. 신 대표는 “나무에서 줄기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태양을 만나 영양분을 만들고 생명을 일구는 일은 나무의 최말단에 존재하는 잎들이 한다”며 “나무를 지배하는 것은 결국 줄기가 아니라 지엽말단”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