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MB)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08년 물가상승률이 4%대를 기록하자 52개 품목으로 구성된 ‘MB물가지수’를 내놓았다. 식자재뿐만 아니라 전기와 시내버스료·학원비까지 민생과 직결된 서비스 요금까지 정부가 직접 관리하겠다는 취지였다.
기대와 달리 성과는 변변치 못했다. 정책 시행 뒤 3년 사이 MB물가지수 품목 가격은 20.42% 올랐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가 12%가량 상승한 점을 고려하면 ‘찍어 누르기 식’ 물가 관리 정책이 되레 역효과만 낸 셈이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인플레이션이 갈수록 심해지자 석유 메이저를 비롯해 식품 기업 등에 가격 담합 혐의를 덧씌워 가격을 내리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고물가는 시중에 풀린 막대한 규모의 달러 탓이 더 컸다. 기업들을 고물가의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차기 윤석열 정부도 이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런데 벌써 불길한 조짐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전기·가스요금 등 공공요금부터 우선 동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물가 당국의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시장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두 축에 따라 결정된다”면서 “특정 품목의 가격을 억누르는 정책이 반짝 효과를 낼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공공기관에 대한 혈세 투입 등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 기업들은 늘어난 원가 부담을 가격에 반영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전력만 해도 지난해 5조 8601억 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올해는 손실 규모가 2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나친 가격 조정이 추후 통제가 어려운 수준의 급격한 가격 변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다분하다.
엇박자 정책도 심각하다. 윤 당선인이 공약한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50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시중에 풀면 가뜩이나 고공 행진 중인 물가를 더 자극할 수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 당시 경기를 띄운다는 이유로 저금리·고환율 정책을 펴다 보니 물가를 잡기 더 어려웠다”면서 “물가를 관리하려면 정책 우선순위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