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끼워 맞추기식 정책이 부작용을 낳고 있습니다.”
5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간사단 회의에서 권영세 부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태양광발전 보급 정책을 거론하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지난 5년간 태양광발전단지를 의욕적으로 늘려왔지만 속도전에만 몰두한 결과 각종 문제를 양산하고 있다고 꼬집은 것이다.
실제 문재인 정부는 신재생에너지발전 비중을 2020년 6.6%에서 2030년 30.2%까지 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고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왔다. 인수위는 이번 정부에서 추진한 탈탄소 드라이브의 부작용을 검토해 정책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겠다고 예고했는데, 정부의 신재생 사업 구조 조정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관측된다.
일단 이번 지출 구조 조정의 명분은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비한 자금 확보다. 예산 당국인 기획재정부로서는 지출 구조 조정을 통해 추경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에 호응해 신재생 사업 구조 조정에 착수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로서는 실제 추경 편성 여부와 관계없이 불요불급한 예산에 메스를 대 인플레이션 대응 여력을 갖추는 한편 문재인 정부에서 심화된 에너지 종속, 고물가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신재생 사업을 손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그간 신재생 사업을 담당하던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묻지 마’ 태양광 확대 정책 등으로 대변되는 속도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당장 신재생에너지발전단지는 원자력이나 석탄발전과 달리 산발적으로 위치해 송배전망을 새로 구축해야 하는데 이런 인프라도 없이 우후죽순 발전단지가 만들어졌다는 지적이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태양광을 비롯한 친환경 전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정권 내내 물량 확대에 우선 초점을 맞춘 것이 문제”라면서 “전력망에 연결이 안 된 ‘깡통 발전소’가 수두룩한 것을 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런 신재생 사업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1차로 ‘신재생에너지 금융 지원 사업’을 대거 축소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2018년 1760억 원에서 올해 6590억 원까지 불어난 신재생에너지 금융 지원 사업은 예산이 줄더라도 사업 자체가 틀어질 위험성이 없는 융자 분야여서 지출 구조 조정의 부담도 덜하다.
특히 각종 난맥상이 드러난 신재생 사업이라는 점, 차기 윤석열 정부도 이런 점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련 예산 중 상당액이 깎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융자 예산 일부가 감액되더라도 사업자로서는 민간 금융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산이 대폭 삭감될 경우 시중금리가 정책금리보다 높아 신규 태양광 사업자가 전보다 줄어들 수는 있지만 그간의 보급 실적을 감안할 때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 당국의 속내다.
발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요지로 전력을 보내지 못하는 발전단지는 무용지물인데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 보듯 인근 지역 주민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아 발전단지가 늘수록 전력망 문제는 꼬일 수밖에 없다”며 “이참에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그간 신재생 사업이 방만하게 운영된 게 사실”이라며 “지출에 따른 득실을 정밀하게 따지기보다 정권이 주도하는 사업이라는 논리로 예산이 편성된 부분이 있었던 만큼 삭감은 불가피하다”고 전했다. 같은 맥락에서 해상풍력단지 조성 사업 등 정부 출자 사업 예산도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인수위가 최근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두고 “어민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며 부처에 사실상 속도 조절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어민의 반대도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인수위가 주민 수용성을 요구한 만큼 사업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어민의 반발을 무시하면서까지 해상풍력 사업을 무리하게 진행할 수는 없다”며 “사업이 지연되거나 중단되는 프로젝트가 발생하면 전체 추진 규모도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