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부차 대학살' 희생된 그녀…손톱 덕에 신원 밝혀졌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제2의 인생 꿈꾸던 50대 여성

자원봉사하던 부차 대학살 현장에서 시신으로 발견

매니큐어로 신원 확인…러군 장갑차에 총격 당해

로이터 연합뉴스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민간인 대학살 현장에서 발견된 한 여성의 시신이 손톱에 칠한 매니큐어 덕분에 이름을 되찾았다. 그는 러시아군의 공격이 쏟아지는 도시에 머물며 주민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던 52살 여성 이리나 필키나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에 따르면 지난달 5일 수도 키이우 북부 외곽 도시 부차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다가 러시아군의 발포에 숨진 한 민간인의 신원이 밝혀졌다. 그의 신원을 밝혀낸 단서는 왼손 매니큐어 무늬였다. 당시 이리나의 약지 손톱에는 분홍색 바탕에 빨간색 하트가 그려져 있었고 나머지 모든 손톱은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시신의 사진을 본 인근 도시 고스토멜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아나스타시아 수바체바는 죽은 여성이 자신의 수강생인 이리나라고 주장했다. 지난 5년간 부차 일대에서 일해온 수바체바는 지난 2월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리나를 가르쳤다며 그가 매니큐어를 칠한 손톱을 봐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리나 필키나(52). 인스타그램 캡처이리나 필키나(52). 인스타그램 캡처



이리나는 50대의 나이에도 메이크업 수업을 들으며 제2의 인생을 꿈꿔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며 유명해지는 것이 목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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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리나의 계획은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중단됐다. 이리나는 두 딸을 먼저 탈출시켰지만 거동이 불편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도시에 남았다. 그는 시내 중심가의 한 쇼핑센터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한 주간 머물며 주민과 우크라이나 군인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봉사 활동을 했다.

이후 이리나는 대피소가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에 따라 부차를 탈출하는 버스 중 하나에 타려고 했다. 하지만 빈 자리가 없어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기로 결정했다. 이리나의 두 딸 중 하나인 올하 슈체드리크(28)는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에서 절대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간청했다. 대신 시내에서 기차를 타고 도시를 탈출하라고 했다.

러시아군 소속 기갑전투차량이 자전거를 타고 교차로 모퉁이를 도는 민간인을 향해 발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캡처러시아군 소속 기갑전투차량이 자전거를 타고 교차로 모퉁이를 도는 민간인을 향해 발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캡처


하지만 이리나는 딸의 만류에도 괜찮다고 안심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이후 다시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올하는 “어머니가 숨졌다는 소문을 듣긴 했다. 실제로 한 달 넘게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며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너무 잘 알지만 자식 된 도리로서 항상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리나는 이날 자전거를 타고 귀갓길에 올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우크라이나 측 드론이 촬영한 한 영상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던 민간인 한 명이 러시아군 장갑차와 마주쳐 총격을 받는 모습이 담겼다. 이후 영상 속 당사자가 이리나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러시아군이 퇴각한 뒤 부차에서 숨진 민간인은 최소 300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부차에서는 시신이 집단 매장된 터가 드러났으며, 등 뒤로 손이 묶인 채 처형된 것으로 보이는 시신도 발견됐다. 하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이같은 대학살의 증거들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주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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