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나는 87세 피아니스트”…60세에 데뷔해 지금도 전 세계 투어 공연 다녀

후지코 헤밍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국내 개봉

굴곡진 삶 끝에 기회 찾아 오지만, 청력 잃어





얼마 전 아이의 유치원 하원을 도와줄 베이비 시터를 뽑았다. 5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그분의 첫인상이 단아하고 편안해 보여 경험이 많은 분들을 두고 그분을 선택했다. 아이를 봐주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분의 사연을 들을 기회도 많아졌다. 이제 막 50대에 접어든 그분은 가까운 지인들이 아파트 매매로 큰돈을 버는 모습을 지켜보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라며 자신의 상황을 비관했다.



이분처럼 나이가 많다고 생각돼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분들에게 후지코 헤밍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의 본명은 잉글리드 후지코 게오르기 헤밍(Georgii Hemming Ingrid Fuzjko)이다. 굳이 많은 이들 중에 이름도 어려운 이분을 소개하려는 이유는 모두가 늦었다고 생각하는 60세에 피아니스트로 데뷔해서다. 게다가 성공하기까지 했다. 지난 2001년 6월엔 유명한 음악가들이 공연하고 싶어 하는 미국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공연을 펼쳤다. 당시 모든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그의 공연은 인기가 많았다. 이제 그는 87세가 됐다. 60세에 피아니스트를 시작했으니 피아니스트로 27년을 산 셈이다. 87세, 비행기를 타기도 힘든 나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후지코 헤밍은 여전히 전 세계 순회공연을 다니며 역동적인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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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코 헤밍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제 중년이어도 새로이 삶을 시작할 용기가 생기는가. 아직 이라면 그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겠다.

그의 본명을 보고 이미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후지코 헤밍은 러시아계 스웨덴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디자인을 전공한 아버지와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 영향 때문인지 그는 어릴 때부터 음악과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특히 피아노를 잘 쳐 어릴 때부터 여러 콩쿠르에 입선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일본에서 활동하다 독일 유학을 위해 여권을 신청하면서 자신이 무국적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나이 스무 살 때 일이다. 후지코 헤밍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독일에 난민으로 인정받아 유학길에 오를 수 있게 된다. 후지코 헤밍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피아노를 놓지 않았다.

인생에 기회가 3번 온다고 했던가. 후지코 헤밍에게도 그토록 원하던 피아니트로서의 기회가 찾아온다. 재능을 인정받아 저명한 지휘자와 함께 솔로이스트로 무대를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때 시련도 찾아온다. 청력을 잃게 되면서 연주자로서의 경력을 중단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 치료를 받으며 음악 교사 자격증을 취득해 피아노 교사로 살아가던 때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일본에 돌아가게 된다. 거기서 활동을 시작하며 그의 이야기가 알려지고 NHK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굴곡진 인생사가 영화로 제작돼 오는 4월 27일 개봉된다.

여전히 나이가 많다는 생각에 도전이 두렵다면 이 후지코 헤밍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파리의 피아니스트:후지코 헤밍의 시간들>을 한 번 봐보자. 이 영화를 보고 용기를 얻어 도전한다면 87세엔 생각지도 못했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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