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生의 마지막까지…윤중식의 팔레트는 '사용중'

[10주기 추모전 '회향']

戰後 北 탈출…성북동서 50년 보내

작고 전날에도 붓 쥐고 그림 몰두

유족, 유화 등 500여점 區에 기증

피난길 드로잉·특유의 풍경화 눈길

윤중식 화백이 마지막까지 사용한 팔레트에는 '98세, 사용중'이라 적혀 있다.윤중식 화백이 마지막까지 사용한 팔레트에는 '98세, 사용중'이라 적혀 있다.




“사랑하는 빠렛트(pallet). 2011년 8월 2일. 현재 98세. 사용중”



상수(上壽·100세)를 앞둔 화가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림을 그리려던 참이었고, 실제로 그리 했다. 애잔한 풍경화, 서정적 인물화 등의 독자적 화풍을 확립한 윤중식(1913~2012)의 마지막 팔레트에 적힌 글귀다. 작고 전날까지도 붓을 쥐고 그림을 그렸던 윤 화백의 성북동 자택 작업실이 10년만에 미술관으로 옮겨왔다.

성북구립미술관이 윤중식 10주기 추모전으로 기획한 ‘회향(懷鄕)’전을 위해서다. 윤중식의 장남인 윤대경·류영옥 부부는 지난 10년간 작업실 방문을 걸어 잠근 채 화백 생전의 원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고, 그 시간 동안 유작과 방대한 자료를 오롯이 보존할 방안을 모색했다. 그 결실로 유족은 지난달 성북구청과 협약식을 체결하고 주요 유화 71점과 드로잉, 자료 등 500점을 성북구립미술관에 기증했다.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장은 “근현대 주요 서양화가의 작품과 자료 대부분이 지역의 공공미술관으로 환원되는 것은 선례가 없는 일”이라며 “지역과의 연계성을 바탕으로 한 근현대미술 연구가 이뤄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윤중식의 성북동 작업실이 고스란히 성북구립미술관 전시장으로 옮겨져 10주기전 '회향'에 선보였다. 왼쪽 벽에 걸린 작품이 작고 한 달 반 전에 완성한 ‘아내의 초상’이다.윤중식의 성북동 작업실이 고스란히 성북구립미술관 전시장으로 옮겨져 10주기전 '회향'에 선보였다. 왼쪽 벽에 걸린 작품이 작고 한 달 반 전에 완성한 ‘아내의 초상’이다.


윤중식의 2004년작 '석양' /사진제공=성북구립미술관윤중식의 2004년작 '석양' /사진제공=성북구립미술관



기증된 귀한 작품과 자료를 실물로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에는 시대별, 장르별 작품 총 140여 점이 엄선됐다. 평양 태생으로 일본 동경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유학한 윤중식은 일찍이 숭실중학교 재학 시절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유학 시절 마티스의 제자인 나카가와 키겐(1892~1972)에게 영향을 받아 야수파·표현주의·자연주의에 심취했고 훗날 이를 바탕으로 특유의 향토적 서정성, 풍부한 색채미를 가진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을 탈출했고 1.4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왔고, 1963년부터 50년 간 거주한 성북동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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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동선은 3층부터다. 노랑과 주홍빛이 안정된 수평 구도로 펼쳐지며 들녘, 산과 바다를 그려내는 ‘윤중식 표’ 풍경화가 대거 선보였다. 고향 후배인 화가 이중섭(1916~1956)이 소(牛)에 자아를 투영해 반복적으로 그렸다면 윤중식은 새, 특히 비둘기를 자주 그렸다. 전시장 한쪽 벽에 비둘기 작품만 20여 점을 모아 걸었다. 초기작에서는 날카롭던 새의 몸짓이 힘으로 충만하더니 둥글게 변화하고, 나중엔 추상처럼 뒤엉키는 식으로 변화를 추구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윤중식 10주기전 '회향' 전시 전경. 작가의 비둘기 그림 20여점을 모아 한 벽에 전시한 것이 눈길을 끈다.윤중식 10주기전 '회향' 전시 전경. 작가의 비둘기 그림 20여점을 모아 한 벽에 전시한 것이 눈길을 끈다.


윤중식의 1988년작 '봄'(왼쪽 위부터)과 연도 미상의 '여름' '가을' '겨울'. 동일한 장소를 같은 크기의 종이에 그린 미공개 작품이 성북구립미술관의 '회향'전에 선보였다.윤중식의 1988년작 '봄'(왼쪽 위부터)과 연도 미상의 '여름' '가을' '겨울'. 동일한 장소를 같은 크기의 종이에 그린 미공개 작품이 성북구립미술관의 '회향'전에 선보였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1988년작 ‘봄’과 연도미상의 ‘여름’ ‘가을’ ‘겨울’은 동일한 장소를 같은 크기의 종이에, 계절감을 달리하며 표현해 눈길을 끈다. 빼꼼 열린 문 밖으로 풍요로운 자연이 펼쳐지고, 담장 위에 새 두 마리가 앉은 모습이 공통적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경민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아마도 작가가 평생을 그리워한 어린 시절 고향 풍경일 것으로 추측한다”고 소개했다.

윤중식은 전쟁통에도 손에서 그림을 놓지 않았고,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가장 생생한 전쟁 기록화 중 하나로 꼽힐 그의 피난길 드로잉 연작이 전시에 나왔다. 작업실이 재현된 2층 전시장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의 인물화, 삽화를 만날 수 있다. 세상 떠나기 한 달 반 전까지 그리고 또 그렸던 ‘아내의 초상’, 그 그림과 마주 놓인 벌건 얼굴의 ‘술 취한 자화상’ 등이 작가과 그의 시대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전시는 7월3일까지.

글·사진=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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