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에 대한 무역장벽 구축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작년 7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030년 EU의 평균 탄소배출량을 1990년의 55%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입법패키지인 ‘기후기본법(Fit for 55)’을 발표했다. 이 법의 핵심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하는 것이다. 탄소국경세제로도 불리는 CBAM은 EU 역내에서 생산된 것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품을 수입하는 경우 해당 제품에 대해 EU 탄소배출권 거래제(ETS)와 연동된 탄소가격을 부과하는 조치다.
작년 12월 EU 의회는 CBAM 수정안을 내놓았다. 수정안은 적용 품목 확대, 적용 및 무상배출권 폐지 조기 시행, 탄소 배출범위에 간접배출 포함 등 초안에 비해 훨씬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적용 품목을 철강과 전력·알루미늄·시멘트·비료 등 5개에서 플라스틱·유기화학품·수소·암모니아 등 4개를 추가한 9개로 확대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4월 초 발표한 ‘EU 의회의 CBAM 수정안 평가와 시사점’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9개 품목 EU 수출금액은 지난 3년 동안 연평균 85억1000만 달러로, 대EU 수출의 15.3%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둘째, 도입 시기를 2025년으로 1년 앞당겼고, 무상 탄소배출권도 당초보다 8년 앞당겨 2028년에 폐지하기로 했다. 셋째, 탄소배출의 범위도 기존 직접배출에서 간접배출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했다. 직접배출은 상품 생산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의미하는 반면, 간접배출은 상품생산에 사용된 전기를 발전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간접배출을 포함하게 되면 제품 생산과정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했다 하더라도, 사용된 전력이 화력발전과 같이 탄소배출 방식을 통해 생산된 것이라면 수입자가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EU뿐만 아니라 미국도 CBAM과 유사한 국경탄소조정(BCA)제도 도입 논의를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의회에 제출한 ‘2021 통상정책의제 및 2020 연례보고서’에서 BCA를 검토 중임을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인도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EU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탄소국경세는 최근 글로벌 대세가 된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맞물려 조만간 도입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제인 정부가 지난 5년 동안 추진해 왔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EU가 ESG 금융택소노미에서 원전과 LNG를 탈탄소에너지로 분류한 것과 달리 우리는 탈원전정책으로 인해 원전을 통한 전기공급이 감축됨에 따라 화력발전소 건립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포스코를 들 수 있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을 기반으로 삼아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삼척블루파워 화력발전소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포스코가 2050년 직접배출에 대한 탄소중립을 실현한다고 해도 간접배출로 인해 포스코의 탄소중립은 ‘그린 워싱’으로 평가절하될 뿐만 아니라 EU의 CBAM 규제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곧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는 탄소중립 등 ESG의 국가적 이행과 관련해 산업계의 현실을 반영해 실천가능한 목표를 정하겠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40%는 준수하되 기업에게 큰 부담을 줄 수 있는 탄소세 도입에는 신중을 기하고, 그 대신 탈원전 폐기와 탄소저감 연구개발(R&D) 및 투자 지원, 온실가스배출권 유상할당 확대 등을 약속했다. 방향전환은 적절하다. 그러나 세부내용이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나무와 숲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보완이 시급하다.
우리나라는 현재 EU와 유사한 배출권 거래제를 국내적으로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EU의 CBAM 적용대상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CBAM 도입은 무역과 환경규범이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돼 적용되면서 가격 이외에도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에 국제무역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당장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예외 적용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산업구조 및 생산방식의 저탄소 전환에 주력해야 한다. 산업구조 전환과 이로 인한 고용 및 노동 환경 변화까지 전방위적 변화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