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006400)가 중국 협력 업체의 요청에 따라 하청업체(수급사업자)가 보유한 기술 자료를 넘긴 혐의로 과징금 2억 7000만 원을 물게 됐다. 이러한 행위는 중소기업의 기술 혁신 의지를 봉쇄해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이다.
공정위는 하청업체 A로부터 다른 사업자 B의 기술 자료를 전달받아 중국 협력 업체에 넘긴 삼성SDI에 시정 명령과 함께 과징금 2억 7000만 원을 부과한다고 18일 밝혔다. 하청 업체가 직접 작성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업자를 통해 보유하게 된 기술 자료도 하도급법상 보호 대상임을 명확히 한 것이다.
삼성SDI는 2018년 5월 중국 법인의 현지 협력 업체 요청으로 A업체가 보유하고 있던 B업체의 기술 자료를 받아 중국 협력 업체에 넘겼다. 해당 기술 자료는 부품을 운송할 때 쓰는 ‘운송용 트레이’의 도면이었다. 삼성SDI는 제조 공정에서 통상 수십 개의 부품을 트레이에 넣어 운송해왔다. 트레이의 단가는 개당 1000원 수준이다.
삼성SDI는 A업체가 직접 작성해 ‘소유’한 기술 자료를 취득한 경우에만 하도급법 적용 대상이 된다고 주장했으나 공정위는 하도급법의 목적과 다양한 거래 현실 등을 고려했을 때 매매나 허락 등으로 ‘보유’하게 된 기술 자료 역시 보호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원청(원사업자)의 거래상 지위 남용 행위를 방지하고자 하는 하도급법의 취지를 고려하면 기술 자료를 하청업체가 ‘소유’한 자료로 좁게 볼 필요가 없다”며 “이러한 행위는 중소기업의 기술 혁신 의지를 봉쇄해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므로 업체가 ‘보유’한 자료까지 두텁게 보호하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청업체가 ‘보유’한 기술 자료를 원청업체가 부당하게 요구하거나 제공받아 사용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올해 3월부터 운영 중인 기술유용 익명제보센터로 제보가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SDI 측은 심의 과정에서 해당 도면의 소유권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가 제공한 사양에 따라 작성됐고 관련 대가를 모두 지급했다는 이유에서다. 삼성SDI는 해당 도면이 비밀로 관리되지 않아 하도급법의 보호를 받는 기술자료로 보기 어렵다고도 주장했다. 삼성SDI 관계자는 “공정위 의결서를 송달받으면 면밀히 분석한 뒤 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