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황철주·이광형·윤석진 "이젠 기술패권 '기정학' 시대…안보직결 '양자·우주' 키워야"

[경제·안보의 핵, 전략기술]

< 4·끝 > 산학연 대표 '국가 전략기술 육성' 토론회

선진국 벤치마킹 탈피…R&D 평가체계부터 개선 시급

KAIST 규제프리구역 지정땐 혁신기술 연구 활발해질것

특허소송시 증거제출 강제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을

각 부처 기술혁신·공급망 관리 총괄 조직마련 서둘러야

서울경제가 18일 산학연 대표를 화상으로 초청해 개최한 ‘국가전략기술 육성 전략’ 토론회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윤석진 KIST 원장, 이광형 KAIST 총장이 고광본 선임기자의 사회로 활발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다. /줌미팅 캡처서울경제가 18일 산학연 대표를 화상으로 초청해 개최한 ‘국가전략기술 육성 전략’ 토론회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윤석진 KIST 원장, 이광형 KAIST 총장이 고광본 선임기자의 사회로 활발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다. /줌미팅 캡처




미중 과학기술 패권 전쟁으로 촉발된 글로벌 ‘기술주권’ 경쟁 시대에 전략기술은 성장 동력 확충과 국가 생존을 좌우한다. 미국·중국·유럽·일본 등이 ‘전략기술 퍼스트’를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선도형(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 기술도 있지만 인공지능(AI), 모빌리티, 수소, 첨단 로봇, 사이버 보안, 차세대 원전은 경쟁형에, 양자와 첨단 바이오, 우주 항공은 추격형에 머무르고 있다. 선도형과 일부 경쟁형 기술은 초격차 추구 전략을 펴고, 추격형과 일부 경쟁형 기술은 빠른 추격 전략이 필요하다. 서울경제는 18일 국내 산학연을 이끌고 있는 전문가들을 화상으로 초청해 ‘국가전략기술 육성 전략’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産), 이광형 KAIST 총장(學), 윤석진 KIST 원장(硏)

사회·정리: 고광본 선임기자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기술주권’ 확립이 핵심 과제로 꼽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지.

△이광형 총장=전략기술은 산업 육성은 물론 안전 보장까지 직결된다. 이제는 지정학(地政學) 시대에서 기술 패권이 국제정치를 좌우하는 기정학(技政學) 시대로 바뀌었다. 한미 간에 반도체와 배터리 기술의 공급망을 공유함으로써 동맹을 강화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윤석진 원장=자유로운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진 상태에서 몇몇 초격차 전략기술을 확보하는 게 기술주권을 갖는 길이다.

△황철주 회장=인구와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는 기술밖에 답이 없다. 기술은 지식에 오감을 더해야 하고, 혁신은 기술에 영감을 입힐 때 나온다. 혁신적인 연구개발(R&D)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가전략기술 수준을 평가한다면.

△윤 원장=정부가 11개 대분류, 43개 중분류, 120개 중점 과학기술을 정해 해외와 비교한 결과(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우리 기술 수준은 미국을 100%로 볼 때 2018년 76.9%에서 2020년 80.1%로 올랐고 일본은 약간 침체됐다. 유럽연합(EU)은 약 96%로 미국에 근접했다. 최고 선도국을 100으로 볼 때 AI 86, 양자 기술 62.5, 우주 60, 2차전지와 정보통신기술(ICT)은 95~96 수준이었다. 제가 이 평가의 위원장을 맡았는데,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황 회장=우리가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는데 실상 아니다. 반도체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에 달려 있으나 하류 수준이다. 소재·부품·장비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제조사가 앞서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우리는 반도체 장비사 중 시가총액 2조 원이 넘는 곳이 없지만 중국은 30조 원이 넘는 곳도 있다. 네덜란드 ASML은 무려 340조 원이고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도 120조 원 이상이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국가전략기술 육성책을 꼽는다면.

△이 총장=분단국가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국방 안보가 중요하다.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기술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 산업 기술과 국방 안보를 모두 할 수 있는 ‘일거양득 기술’을 잘해야 한다. 양자, 우주, 사이버 보안, AI, 로봇 기술 등이다. 국방을 잘하면 수출도 잘된다.

△황 회장=국방 우주뿐 아니라 반도체, 디스플레이, AI, 뉴모빌리티, 5G, 6G, 우주 항공, 재생에너지(태양광 등), 스마트 농업(식량안보), 메타버스도 중요하다. 전략기술에 과감히 투자해 성장 엔진을 확충해야 한다. 우리 수출에서 반도체 비중이 20%가 넘는데 또 다른 전략기술을 키워야 한다.

-산학연 협력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은데 어떤 상황인가.

△윤 원장=산학연이 혼연일체가 돼 목표 의식을 공유하고 매진해야 미국이나 EU를 따라갈 수 있다. 그들에 비해 연구개발(R&D) 규모나 연구원 수가 훨씬 적지 않나. 예를 들어 양자 기술의 경우 합심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황 회장=말로는 산학연 협력을 외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과학자와 기술자가 상호 협력해 가치를 높여야 하는데 이 역시 잘 안 된다. 이래서 R&D 혁신이 잘될 수 있겠나.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은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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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장=KAIST는 국방 관련 일거양득 기술에 집중하고자 한다. 연구에서의 실패를 용인해야 한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아예 지원할 필요가 없다. 정부도 80% 이상 성공 가능성이 있는 연구에 대해서는 연구비를 줘서는 안 된다.

△윤 원장=출연연이 전략기술 개발의 중심이 돼 산학을 아울러야 한다. 자전거 바퀴의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주심과 바큇살)’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서울 홍릉 지역에서는 KIST·고려대·경희대가 R&D 협력을 통해 바이오에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 의사 등 수요처에서 필요한 것을 연구해 상용화와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 KIST에서는 연간 7~8명의 연구원이 창업하고 기술이전도 늘고 있다. 뿌리는 바이러스 퇴치체를 임상을 통해 곧 발표하고 탄소 중립 기술도 LG화학에 기술이전한다. 기술이전 수입이 지난해 64억~65억 원이었는데 올해는 최대 100억 원까지 목표로 한다. 출연연은 남 따라 하는 연구가 아닌 세계 최초·최고 연구를 해야 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이광형 KAIST 총장이광형 KAIST 총장


-국가 R&D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데.

△황 회장=차별화된 R&D를 해야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다. 정부가 대학과 출연연·기업에 지원하는 R&D 시스템이 단기 평가에 집중하고 있다. 혁신은 긴 인큐베이팅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의 R&D 지원은 속도와 타이밍이 중요하다. 반도체 분야는 더 그렇다. 빨리 하면 혁신을 할 수 있으나 늦게 하면 모방에 그친다.

△윤 원장=연구 목표가 선도국 기술을 개량하는 수준에 머무르거나 자체 기술 확보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산학연이 혼연일체가 돼 기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출연연은 국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임무형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취미로 연구하고 논문·특허를 내서는 곤란하다.

-R&D 평가 체계를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은데.

△윤 원장=그렇다. R&D를 혁신하려면 우선 평가 체계부터 바꿔야 한다. 과제 선정 평가는 정성적 측면을 고려하는 경향이 분명한데 출연연이나 대학에서는 여전히 정량 지표를 들여다본다. 진짜 바꿔야 한다. 성실 실패를 용인하자는 목소리도 많지만 현장에서는 수사에 불과하고 실행에 옮겨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전략기술을 개발할 때 표준을 선점하고 R&D 기획에서도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중요한데.

△황 회장=정부가 2019년 일본의 소부장 수출 규제 이후 많이 신경을 쓰고 있지만 반도체라든지 전략기술 중 소부장이 중요한 산업이 많다. 반도체의 경우 소부장이 초기 시장을 선점하지 않으면 제조 라인에서 쓰지 않는다. 반도체 라인 하나 짓는 데 10조 원이 넘게 드는데 한번 기술과 표준을 정하면 바꾸지 못한다. 잘못되면 1~2년간 공장이 멈추는데 위험을 감수하겠나. R&D 기획 측면에서 보면 앞으로 5년 정도 후에는 반도체를 실리콘 외에 플라스틱과 금속 위에서도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런데 아직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윤 원장=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과학기술을 발전시키려면 선진국만을 벤치마킹해서는 안 된다. R&D 기획에서도 어떻게(how)가 아닌 왜(why)를 고려해야 할 때다.

-국가적으로 규제 혁파와 특허 등 지식재산(IP) 전략이 무척 중요한데.

△황 회장=모방 경제를 지나 혁신 경제가 펼쳐지고 있다. 정책을 만들 때 혁신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이해하고 육성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 기술의 초기 시장을 키우기 위해 민간이 적극 참여하는 ‘민관혁신위원회’를 만들어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특허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혁신 기술을 10년 이상 블루오션으로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미래 성장 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특허 전략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 총장=규제 철폐는 아무리 역설해도 잘 안 된다. 없애는 규제보다 생기는 규제가 더 많다. 규제 프리 지역과 대상을 늘리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KAIST를 규제 프리 구역으로 해주면 바이오생명과학이나 드론 등 전략기술에 대한 연구를 더 활발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 패권 시대에 특허 전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 선도국으로 발돋움해야 하는데 IP 보호 정책을 강하게 펴야 한다. 특허침해 소송 시 증거 제출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윤 원장=기술 안보의 중요성에 비춰 규제를 유연하게 운용해야 한다. 전략기술에 대해 ‘선개발 후규제’나 ‘기술 샌드박스’ 같은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특허 전략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다. KIST는 지난해 과감하게 특허 출원 수를 평가 지표에서 뺐다. 평가를 위해 숫자 채우기식으로 하지 말고 질을 높이라는 뜻이었다. 그 결과 파급효과가 낮은 특허출원은 감소하면서도 해외 특허출원과 등록은 유지되는 등 고무적이었다.

윤석진 KIST 원장윤석진 KIST 원장


-차기 정부에 제안할 게 있다면.

△이 총장=기술 패권 시대에 전략기술을 안보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국가적으로 전략기술을 강력히 관리해야 한다. 기술 혁신과 공급망 관리를 관장하고 조정하는 부서가 전체 그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과학기술부총리가 필요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부처들이 여전히 칸막이를 치고 있어서야 되겠나.

△윤 원장=인구절벽과 지역 붕괴가 큰 문제다. 지역 거점 대학은 정원을 다 못 채울 정도다. 출연연의 지역 조직 중 R&D를 할 수 있는 곳이 실제 60여 개인데 거점 대학, 지역 산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인력 양성과 산업 육성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황 회장=과학기술 발전과 혁신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 핵심 과학자와 기술자를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과 연구소의 경우 화학물질로 꽉 차 있는데 화학물질관리법과 화학물질등록·평가법이 강해 애로가 많다.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1등을 한다면서 공장 짓고 연구하는 속도는 세계 꼴찌 수준이다. 불필요한 규제를 걷어내서 글로벌 기술 경쟁에 적극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고광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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