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구글은 할 수 있는지를 묻지 않는다…어떻게 할 지 고민할뿐" [장애인의날 '구글러' 일문일답②]

한국에서 코딩할 때 "장애인이 어떻게 하냐" 반응

구글 일하면서 용기 얻어…"일단 해보자는 분위기"

"장애는 특별한 게 아닌 또 다른 다양성 중 하나"

서씨 "동료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구글러 되고 싶다"

이씨 "실패할 때마다 포기 않고 도전하는 통솔자"

구글 엔지니어 서인호씨. 사진 제공=구글 코리아구글 엔지니어 서인호씨. 사진 제공=구글 코리아




구글 엔지니어 서인호(26)씨는 앞이 보이지 않는 전맹(全盲) 장애인이다. 8살 녹내장 수술 이후 시력을 잃은 뒤 서씨가 살아온 삶은 ‘장애인이니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됐었다. 서씨는 “한국에서 코딩을 한다고 하면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하냐는 반응부터 나왔다”며 “그렇게 장애인을 정해진 틀에서 규정한 인식을 스스로 내재화했던 것 같다. 난 앞이 안 보이니깐 뭐든 스스로를 깎고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글을 만나며 그의 인생은 큰 변곡점을 맞았다. 2020년 12월 인턴으로 시작해 1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 올 1월부터 정식 근무를 시작했다. 현재 ‘텐서플로우’라는 인공지능(AI) 학습 모델의 최적화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구글에서 일하며 느낀 건 내가 뭘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일단 해보자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어떻게 도달할 지부터 생각한다”며 “사람마다 각기 다 다른 것처럼 다른 방법으로 가면 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서씨는 “내 방법으로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미국의 다양성이자 구글의 다양성 문화라고 본다”고 말했다.

서씨와 함께 구글에서 근무하는 휠체어 장애인 이석현(29)씨 역시 “구글에는 항상 다양성이 중요한 어젠다로 깔려 있다”며 “같은 행동, 같은 말을 하더라도 ‘너는 장애인이니까’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나를 또 다른 다양성 중의 하나로 이해해 준다. 마치 눈이 불편하면 안경을 쓰듯 장애도 누구나 가지는 하나의 특성이라 보는 것”이라고 했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18일 서씨와 이씨를 만나 구글의 ‘다양성’이란 무엇인지, 그들의 취업기(記)와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 기업과 외국계 기업간 차이가 궁금하다.

△(이석현) 구글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있다는 이유로 과하게 관심을 받거나 주변에서 흘끔거리는 시선을 보내지 않는다. 혼자 해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내가 장애인이라고 특별하게 대하지 않는다. 회식장소 고를 때 이동에 무리 없는지 확인하는 정도뿐이다. 일반적으로 접근성이라고 하면 계단 대신 경사로를 깐다든지 눈으로 보이는 물리적 접근성을 생각한다. 그런데 심리적 접근성이라는 것도 있다. 구글에서는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밝힐지 안 밝힐지부터 시작해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장애인이라서 모든 걸 도와줘야 한다기 보다는 정말로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내가 끄는 휠체어가 복도에서 소음을 내지 않나, 바퀴로 벽을 긁지는 않는지, 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지 등 많은 걸 신경써야 한다. 그러다 보면 상당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구글이란 회사 내부 분위기는 이런 문제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어서 심리적으로 안도감을 준다.

-무엇때문에 구글 문화가 다르다고 생각하나.

△(이석현) 항상 다양성이라는 게 중요한 어젠다로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장애인을 배려해줘야 하는 대상, 수혜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구글은 모두가 동일선상에 있다. 장애라고 특별한 게 아니라 마치 눈이 불편하면 안경을 쓰는 것처럼 누구나 가지는 하나의 특성이라고 본다. 그래서 다양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똑같은 행동,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너는 장애인이니깐 도와준다기 보다는 나를 또 다른 다양성 중의 하나로 이해해 준다.

△(서인호) 미국 사회에서 느낀 점과도 맞닿은 것 같다. 한국에서는 제가 코딩 한다, 엔지니어링 한다 하면 어떻게 시각장애인이 하냐는 반응부터 나온다. 컴퓨터는 시각이 있는 사람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그렇게 장애인은 뭘 할 수 있고,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만연하고 나도 20년간 살며 스스로 내재화했다. 난 앞이 안 보이니까 뭐든 나 자신을 깎고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에 오고 구글에서 일하며 느낀 건 내가 뭘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일단 해보자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어떻게 목표에 도달할 지부터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가면 된다는 것이다. 내 방법으로 어떻게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미국의 다양성이자 구글의 다양성 문화라고 본다.

사진 제공=이미지 투데이사진 제공=이미지 투데이


-인호씨가 인턴을 거쳐 정규직 전환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땠나.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서인호) 제 스스로 삼중고라고 말하는데 언어, 접근성, 역량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이 컸다. 같은 영어라도 미국 동료가 쓰는 영어, 대만 동료가 쓰는 영어가 각각 억양이 다르다. 한국어로 해도 이해가 될까 말까하는 프로젝트에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로 소통하니 정말 힘들었다. 접근성 측면에선 앞서 지적했듯 스크린 리더 때문에 진땀을 뺐다. 그동안 한국판 스크린 리더만 쓰다가 여기 오니 해외 스크린 리더를 강제로 써야 했다. 한국인 시각 장애인은 나 혼자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스스로 익혀야 했다. 특히 학교 다닐때 다루던 코딩은 잘해야 코드가 수만 줄이었는데, 구글에 오니 실전에서는 수백만 줄의 코드를 다뤄야 했다. 가뜩이나 스크린 리더 적응하느라 정신 없는데 소화해야 하는 업무량이 방대해지며 ‘멘붕’에 빠졌다. 또 기본적으로 내 실력이 한참 모자란 이유도 커서 배우고 수준을 끌어올리느라 고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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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한 문제들은 어떻게 극복했나.

△(서인호) 언어장벽은 지금도 고민이 많다. 그래도 시간이 쌓이며 좀 더 명확하게 의사 전달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다. 다만 편의상 1:1 화상회의를 최대한 줄이고 채팅이나 메일로 소통하려고 한다. 구구절절 말하는 것보다 코드로 소통하는 게 더 편하다. 코드로 지금 내가 어느 부분을 보고 있는지 링크를 보여주는 게 더 효율적일 때도 있다.

접근성과 관련해서는 인턴이었을 때 내 매니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내 문제는 학생 때처럼 코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해하려던 것이었는데 당시 매니저가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처리해야 한다고 일러줬다. IT 기업에서 다루는 코드는 모두 다 알고 일하는 건 누구든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어디를 읽어야 하는지 가정을 세우고 필요한 부분만 찾아내는 연습을 하며 업무 효율이 많이 개선됐다.

역량 문제는 내 태도를 바꾼 뒤 해결해 가고 있다. 기존에는 혼자 공부하고 혼자 해결하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는 동안 새로운 일이 계속 생기고 이렇게 해선 지속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에 주변에 이것 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면 동료들이 하나 하나 알려주더라.

-본인만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서인호) 인턴이었을 당시 매니저가 했던 말이 있다. 엔지니어 업무가 굉장히 추상적이면서 높은 수준의 논리가 요구되는데 앞이 잘 안 보인다는 제 특성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저는 시각적인 부분에 잘 현혹되지 않기 때문에 곰곰이 생각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많다고 했다. 저는 머릿속에서 가정하고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 부분에서 남들보다 유리할 수 있다는 건데 사실 아직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하하).

-정규직 전환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서인호) 일단 팀을 옮겼다. 인턴이었을 당시 3명 팀이었는데 현재 팀은 40명 규모다. 그러다 보니 팀 동료들의 일을 함께 고민하는 업무가 많아졌다. 이전에는 내 개인 미션에 쏟는 시간이 하루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하루 2~3시간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다른 동료들이 나와 함께 일하고 싶은 인재가 되자는 목표도 생겼다. 이번에 미국에 첫 출장을 오고 온갖 나라의 사람들을 만났다. 정말 좋은 엔지니어, 개발자가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큰 자극이 됐다. 여기서 잘 버티고 잘 하는 모습을 보여 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도 이 일이 할 만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구글 커스터머 솔루션 담당 이석현씨. 사진 제공=구글 코리아구글 커스터머 솔루션 담당 이석현씨. 사진 제공=구글 코리아


-석현씨가 구글에 입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석현) 미디어 회사에서 통신사로, 통신사에서 구글로 옮겨왔다. 이 세 커리어가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디어가 시청자에게 정보를 연결, 전달하는 곳이라면 통신사는 상품을 통해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는 곳이다. 구글은 여기서 더 저변을 넓혀보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하게 됐다. 좀 더 글로벌한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인사이트(통찰력)을 얻고 싶었다. 그동안 장애인에게 있어 외국계 기업이 가지는 장벽을 허물고 싶은 마음도 컸다.

-MBTI가 대담한 통솔자(ENTJ)라고 들었다. 리더로서의 꿈도 있을까.

△(이석현) 같은 MBTI 중에 도널드 트럼프가 있어서 우스개 소리로 ‘메이크 구글 그레이트 어게인’인가 생각하기도 했다(하하). 다른 사람을 이끄는 것도 리더십이 될 수 있지만 나 자신을 이끄는 리더십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대담한 통솔자로서 도전적이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굴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것이다. 실패를 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지만 한 번 더 해볼까에 방점을 두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나아가고자 한다.

외적으로는 구글에 있는 다른 장애인분들을 도울 수 있는 뭔가를 찾고 싶다. 아직 어떤 형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앞으로의 목표 중 하나다. 또 하나는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제 일을 통해 한국 시장이 어떤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부진한 점은 무엇인지와 관련해 심도있게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다. 특히 문화콘텐츠 쪽에 관심이 많아 게임, 예술 쪽으로 파고들고 싶다. 이 분야에서의 사업성을 발굴해 내고 싶다. 마지막은 앞서 두 가지가 실현되면 정반대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금은 광고주 지원 업무를 하고 있지만 유튜브 크리에이터 지원을 하는 파트너십팀으로 간다거나 제품 판매 팀으로 가거나 커리어를 확 바꾸는 것이다.

-접근성은 사실 장애인만이 아니라 노인, 어린이, 외국인, 성별 등 모두의 문제이기도 하다. 보다 나은 접근성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기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할까.

△(서인호) 사람마다 상황이나 조건이 다른 것이지 사회화된 인간으로서 가지는 목표, 방향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 조건이 통제할 수 있고 영원할 것이라 믿는다. 누구든 갑자기 상황이 안 좋아져 갖고 있던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한다. 한순간에 환경이 바뀌어 지금 내가 하던 일을 당장 그만둘 수 있는데 말이다. 장애인·비장애인, 외국인·한국인, 연령, 성별을 떠나 다른 사람이 처한 상황을 나와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다들 사는 게 바쁘고 여유가 없는 건 알지만 다름을 이해하는 공감이 없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메이저에 있던 내가 어느 순간 마이너에 가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하며 다시 올라설 수 있다는 믿음, 상식이 통용된다면 지금처럼 모두가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이석현) 장애를 가진 분들 중 여전히 망설이는 분들이 많다. 어려운 일일 수 있지만 모두가 다같이 나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한국에서 장애인의 위치는 현재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가기 위한 문턱에 선 단계라고 본다. 그 동반자가 인호님 같은 장애인이 될 수도 있지만 비장애인들도 함께 옆에서 나아가길 바란다. 아직까지 한국이란 나라, 서울이란 도시에서 기대하기 어려운 게 많다. 다양성이란 가치에 대해 우리 사회가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박현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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