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닥에 상장한 SPAC(기업인수목적회사) ‘밸류언스머저’는 내년 상반기까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 기술 기업을 찾아 합병할 계획입니다. 바이오·생명과학을 우선으로 넓게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기업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정인철 크리스탈지노믹스(083790)(CG) 사장은 22일 서울경제와 만나 "유망한 투자처를 확보하는 동시에 CG와 시너지 효과를 낼 만한 기업과 인수합병(M&A)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며 이 같이 밝혔다.
CG는 투자 자회사인 크리스탈바이오사이언스(CBS)를 통해 올 3월 2억 달러 규모의 스팩 '밸류언스머저'를 나스닥에 상장시켰다. 한국계 금융바이오 전문가와 국내 사모펀드가 미국 밸류언스캐피털, 크레디언파트너스와 함께 아시아 기업 전용 스팩을 나스닥시장에 입성시킨 첫 사례다. 나스닥에 상장한 스팩 기업들은 대부분 북미 기업과 합병 전략을 내세운다. 밸류언스머저는 이례적으로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성장기업으로 합병 대상을 한정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초대형 악재가 있던 시기지만 글로벌 기관투자자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받으며 2억 달러(약 2384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정 사장은 "미국은 스팩시장이 최근 몇년새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유망 기업들이 직상장보다 선호하는 추세"라며 “CG가 바이오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만큼 밸류언스머저가 합병기업을 선택할 때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자회사인 마카온의 나스닥 스팩상장도 검토하고 있다. 그는 “마카온의 나스닥 스팩상장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며 "자회사와 M&A를 통해 CG의 기업가치를 높이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강조했다. 마카온은 CG의 자회사로 섬유증 신약후보물질 ‘CG-750’을 개발하고 있다. 2020년 280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고 1상임상 진행에 속도를 내는 단계다.
CG가 바이오 금융에 뛰어든 것은 2019년. 당시 자본금 200억 원을 투입해 CBS를 설립했다. 이듬해 신기술사업금융업 등록을 완료하고 한국모태펀드로부터 출자를 받아 125억 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현재 벤처투자조합을 통해 혁신신약과 스마트헬스케어,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융합 혁신치료 등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유망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를 진행 중이다. 자체 자본금으로 인수한 슈펙스비앤비는 파나케이아(058530)로 사명을 바꾸고 바이오신약 개발 등 신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남다른 길을 선택한 배경에는 국내 상장심사 기준이 갈수록 엄격해지고 상장에 소요되는 기간이 길어지는 점도 한몫 했다. 정 사장은 "CG의 자체 연구개발(R&D) 역량은 뛰어나지만 신약개발의 효율을 높이려면 오픈이노베이션이 필수라고 판단했다"며 "바이오업종에 관심있는 외부 투자기관들과 손잡고 국내외 유망 투자처를 찾아나서게 됐다"고 전했다.
CG는 지난 2005년 국내 기술특례 1호로 코스닥에 상장한 신약개발 기업이다. 2015년 국내 바이오벤처 최초로 골관절염 치료제 '아셀렉스'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 판매허가를 받았다. 이듬해에는 미국 바이오벤처 앱토즈바이오사이언스와 급성 골수성 백혈병 신약 후보물질 'CG-806'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주력 파이프라인인 '아이발티노스타트'는 올해 초 미국식품의약국(FDA) 임상 2상을 승인받았다. 상반기 중 미국 현지에서 환자 모집에 돌입할 예정이다. 개발 초기 단계지만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발표에 채택될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