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비혼부도 자식 키우게 해달라" 사랑이 아빠는 오늘도 싸운다

'비혼부 지키미' 8년 김지환 아빠의품 대표

'출생 신고는 원칙적으로 엄마만'

현행법, 국적·주민번호 부여 막아

유령처럼 사는 아이 생존권 위협

"기본권 부여 후 부모 자격 따져야"

법 개정 끌어낸 후 헌법 소원 나서

최고의 아동 복지는 아빠와 엄마

아빠들, 힘들어도 양육 포기 말길

김지환 아빠의품 대표김지환 아빠의품 대표




대한민국에서 결혼을 해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 중 아무나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낳은 자녀는 어떨까.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母)가 하여야 한다.’ 가족등록법 제 46조 2의 규정이다. 한마디로 비혼부(非婚父)는 원칙적으로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어머니의 소재가 불명확하거나 출생신고에 협조하지 않을 때 등 예외적일 때만 가능하다. 그것도 수 많은 신고와 재판을 거쳐야 한다. 비혼부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차별의 삶을 걷게 되는 것이다.



딸 사랑이를 8년 동안 홀로 키우고 있는 김지환(사진) 아빠의품 대표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지금은 사랑이가 국적과 주민등록번호를 받기는 했지만 아직도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수 많은 아빠들을 생각하면 이러한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지난해 비혼부도 아이들의 출생 신고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헌법소원을 낸 이유다. “부모 문제로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기본권과 평등권을 박탈 당하고 있습니다. 일어나서는 안될 일들이 우리나라에서는 현실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26일 서울경제와 화상 인터뷰에서 들린 김 대표의 목소리 톤은 상당히 많이 올라가 있었다.



출생 신고를 못한 아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국적도, 주민등록번호도 없다. 유령이나 마찬가지다. 어린이집 교육, 급식 지원 같은 기본적인 지원들은 꿈에서나 가능하다. 당연히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 없다. 김 대표 역시 마찬가지. 그는 “혼자 육아를 하다 보니 경제 활동 자체를 할 수 없었고 결국 2~3개월 만에 신용불량자가 됐다”며 “결국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일자리를 찾아 사정하며 다닐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얼마 전 교육부에서 비혼부모 자녀에 대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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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환 아빠의품 대표김지환 아빠의품 대표


김 대표가 나홀로 육아를 하는 아빠에 대해 “부성애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런 생활을 1년 정도 하다 보면 아무리 부성애가 강하고 책임감이 강해도 물리적 여건상 아이를 지킬 수 없는 순간이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비혼부를 둘러싼 환경은 결국 육아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단지 기본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위기는 언제든 올 수 있다. 2015년과 지난해 가족관계법이 두 차례 개정됐지만 아직도 출생신고를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는 재판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재판에 필요한 시간은 빨라야 6개월. 그 사이 받는 고통은 위기의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 대표는 “아이에게 안 좋은 사건이 벌어지고 그것이 트리거가 돼 삶과 가정을 파괴할 수 있다"며 “출생신고가 기본권 만이 아니라 생존권의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결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누구든 즉시 출생 신고를 할 수만 있으면 된다. 주민등록번호 13자리만 있으면 어린이집도 보내고 학교에서 급식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안 다닌 곳이 없다. 국회를 발이 닳도록 드나들어 국회의원들이 귀찮아할 정도고 보건복지부, 법무부에도 수없이 찾아갔다. 그는 “아이에게 국적과 기본권을 부여한 후 아빠와 엄마의 자격을 보는 것으로 선후가 바뀌어야 한다"며 “이렇게 출생신고와 가족관계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입술이 불어 트도록 말했지만 아직까지 돌아오는 피드백은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혼자 육아를 하는 아빠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너무 잘 안다. 한때 그도 그랬다. 아이를 돌보려고 야근 회식은 모두 빠졌고 회사 행사도 불참했다. 결국 자격지심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는 “어떤 때는 여행사 운전사가 됐다가 어떤 때는 인테리어 노동자로 변신하고 일이 생기면 부동산 중개도 했다”라며 “그래도 건강하게 잘 자라는 사랑이를 보고 있으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세상의 모든 비혼부에 대한 응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사소하지만 예쁜 아이들이 하루 하루 나아지는 것을 보면 삶이 달라질 수 있다”며 “아무리 법과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도 아이에게 가장 크고 강한 복지는 아빠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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