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이 평생을 두고 수집한 미술품·문화재 2만3000여점을 유족들이 국·공립미술관과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 28일로 1주년을 맞았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과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기증 1주년을 맞아 28일부터 8월 28일까지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을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건희 회장의 수집품을 기증받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했고, 공립미술관 5곳이 기증받은 작품을 각각 대여했다. 전시 작품은 선사시대부터 21세기까지의 금속, 도토기, 전적, 목가구, 조각, 서화, 유화 작품 등을 아우르는 총 295건 355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등 249건 308점을, 국립현대미술관은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등 34건 35점을 출품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김환기의 ‘작품’, 대구미술관은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 박수근미술관은 박수근의 ‘한일’, 이중섭미술관은 이중섭의 ‘현해탄’, 전남도립미술관은 천경자의 ‘만선’ 등 공립미술관 5개처에서 총 12건 12점을 출품한다. 전시품 중 국가지정문화재만 21건 33점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일광삼존상(一光三尊像)’ 등 국보 6건 13점과 ‘삼현수간첩(三賢手簡帖)’ 등 보물 15건 20점 등이다.
■"문화유산 수집은 미래를 위한 것"
고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4년 리움미술관 개관사에서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인류 문화의 보존이라는 수집 철학을 바탕으로 시대와 분야를 넘나드는 문화유산과 미술품을 모은 그의 깊은 속내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번 특별전은 수집과 기증의 의미를 되새기고, 고 이건희 회장 기증품의 다양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기획됐다.
제1부 ‘저의 집을 소개합니다’는 컬렉터의 집을 은유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가족과 사랑’을 주제로 한 근현대 회화와 조각품을 전시다. 장욱진의 ‘가족’은 허물없는 가족애를 순진무구한 화풍으로 전달한다. 처음 공개되는 정약용(1762~1836)의 ‘정효자전(鄭孝子傳)’과 ‘정부인전(鄭婦人傳)’은 강진 사람 정여주의 부탁을 받아 그의 일찍 죽은 아들과 홀로 남은 며느리의 안타까운 사연을 글로 쓴 서예 작품이다.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조우해 이루는 한국적 정서도 느낄 수 있다. 18세기 ‘백자 달항아리’와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은 김환기의 추상 회화가 전통 문화와 자연에 대한 향수에서 출발했음을 한 눈에 보여준다. 제1부 중간에 작은 정원을 연출하여 ‘동자석’을 전시하고, 마지막에는 프랑스 인상주의의 거장 클로드 모네가 만년에 그린 ‘수련이 있는 연못’을 국내 최초로 전시한다.
■매달 교체되는 작품…N차관람 필수
제2부 ‘저의 수집품을 소개합니다’는 수집품에 담긴 인류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자연과 교감하는 경험’을 보여주는 조선 산수화와 현대 회화, ‘자연을 활용하는 지혜’의 토기와 도자기, 금속공예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생각을 전달하는 지혜’에서는 종교적 깨달음과 지식이 담긴 불교미술과 전적류를 전시하는데 고려시대 예술의 정수 중 하나인 고려불화를 다채롭게 만날 기회다. 첫 2개월간은 14세기 고려불화인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가 전시되고, 다음 2개월은 보물로 지정돼 있는 ‘천수관음보살도(千手觀音菩薩圖)’가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이 회장의 기증 작품에는 고문서도 다량 포함돼 있다. “기록 문화가 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정보화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더욱 힘들다”라는 그의 철학이 사명감으로 작동했다. 11세기 고려의 유산이며 국보로 지정된 ‘초조본 현양성교론(初雕本顯揚聖敎論)’, 금속활자로 인쇄한 초간본 ‘석보상절(釋譜詳節) 권20’ 등 귀중한 옛 책이 전시장으로 나왔다.
주요 서화작품은 전시기간 중 1개월마다 교체전시된다. ‘인왕제색도’와 ‘추성부도’는 빛에 쉽게 손상되는 고서화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박대성의 ‘불국설경’에 이어 이경승의 ‘나비’가 전시된다.
고 이건희 회장은 “전통문화의 우수성만 되뇐다고 해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 정말 ‘한국적’이라고 느낄 수 있을 때 문화적인 경쟁력이 생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번 특별전이 열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