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같은 범죄에 징역 15년 혹은 징역 30일…제도가 '오류의 함정' 벗어나려면

[책꽂이-노이즈]

■대니얼 카너먼 외 2인 지음, 김영사 펴냄

카니먼 등 행동경제학 석학 3人

의사결정 방해 '생각의 잡음' 규명

정확한 판단·일관성 잃은 제도는

신뢰성 추락·심각한 불공평 불러

가치·개성보다 규칙·통계 우선 등

잡음 줄이기 위한 6가지 원칙 제시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재판이 판사의 기분이나 날씨처럼 운에 따라 결정된다면 사법 제도를 믿을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숱하게 일어난다. 미국에서 범죄 전력이 없는 두 사내가 각각 58달러, 35달러의 위조수표를 현금화했는데 한 사람은 징역 15년을, 다른 사람은 징역 30일을 선고 받았다. 또 미국 판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지역 축구팀이 패배한 다음 날에는 평상시보다 더 가혹한 판결을 내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프랑스 판사들은 피고가 생일이면 관대한 판결을 내리는 경향을 보인다. 대체 이런 일이 왜 벌어질까.

신간 ‘노이즈(Noise)- 생각의 잡음’는 “판단이 있는 곳에 잡음이 있고, 그 잡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저자는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생각에 관한 생각’을 쓴 대니얼 카니먼 미 프린스턴대 심리학 및 공공행정 명예교수, 베스트셀러 ‘넛지’의 공동저자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 고문이었던 캐스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올리비에 시보니 프랑스 경영대학원 HEC파리의 전략교수이다. 지난해 5월 영국에서 출간됐을 때 이들 행동경제학자 3인방이 공동 집필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이들은 인지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을 바탕으로 ‘편향(bias)’과 함께 인간이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인 ‘잡음’이라는 개념을 경제학계 최초로 규명한다. 공공 제도 운영, 기업 경영 등 인간의 모든 영역에 존재하며 오류를 일으키는 잡음이라는 존재를 끄집어내면서 대안까지 모색했다는 점이 독특하면서도 신선하다.



여기서 편향이란 선입견 등의 이유 때문에 문제의 핵심에서 체계적으로 벗어난 판단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입사 지원자의 단정한 외모는 직무 역량과 무관한데도 면접관들에게 똑같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남겼다면 그 지원자는 ‘후광 효과’라는 편향의 덕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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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잡음은 ‘판단할 때 나타나는 원치 않는 변산성(variability)’이다. 즉 문제의 핵심에서 임의적으로 분산된 판단이다. 예를 들어 같은 입사 지원자를 놓고 면접관들이 문제 핵심인 업무 능력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경우를 말한다. 다시 말해 여러 사람이 판단했는데 오류가 대부분 똑 같은 방향이라면 편향이 존재하는 반면 오류가 일관되지 않고 제멋대로 분산된다면 잡음이 문제인 경우다.

저자들은 형사사법제도, 의료, 기업 경영, 인사, 지문 감식, 정치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간의 인지 영역에 숨어 있는 잡음을 규명한다. 때로는 편향보다 잡음이 더 사회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편향은 오류를 일으키는 원인이 명확해 진단과 처방이 가능하지만 잡음은 예측하기 힘들고 변동성도 강하기 때문이다. 책은 “편향이 쇼의 주인공이라면, 잡음은 통상 관객 눈에 띄지 않는 단역 배우”라며 “잡음은 인과적 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고 통계적 시각에서만 보인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잡음 자체는 의견 불일치를 일으키지만 환영할만한 요소라고 말한다. 잡음은 다양성의 원천이자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의견의 다양성은 아이디어와 선택지를 만들어내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역행적 사고는 혁신에 필수적이다. 트레이더들의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시장이 형성된다.”

문제는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는 ‘제도 잡음’이다. 미국에서 망명을 신청할 경우 어떤 판사는 5%만 허용하고 어떤 판사는 88%까지 허용한다. 또 이민신청을 하면 더운 날보다 시원한 날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더 높았다. 의사들은 아침보다 퇴근이 임박한 시간에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았다. 스트레스와 피로감에 시달린 의사들이 서둘러 일을 끝낼 생각에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데도 즉효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 건강과 사법처리가 ‘누가 걸리느냐’라는 ‘사람 간 잡음’, ‘그가 어떤 상황이냐’라는 ‘사람 내 잡음’에 달린 셈이다.

이 같은 잡음 때문에 전문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할 제도가 일관성을 잃으면 신뢰가 훼손되면 결국 심각한 불공평을 야기할 수 있다. “입사 지원자 한 명이 마땅히 받아야 하는 점수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고 다른 지원자가 낮은 점수를 받았다면 엉뚱한 사람이 채용될 수 있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다른 취급을 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책은 의사결정 때 잡음을 줄이기 위한 6가치 원칙도 제시한다. 우선 판단할 때 개인의 가치나 개성을 앞세우지 말고 규칙을 세우고 알고리즘을 적절히 사용하라고 조언한다. 이밖에 ‘개인의 경험보다는 외부 관점을 활용하라’, ‘판단을 여러 개의 독립적인 과제로 구조화하라’, ‘통계와 데이터를 먼저 살펴본 뒤 의사결정의 최종 순간에 직관을 허용하라’, ‘토의에 앞서 각자의 독립적인 판단을 모으라’, ‘각각의 가치를 평점을 매겨 절대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줄을 세워 상대적으로 평가하라’ 등이다.

“잡음이 덜한 세상에서는 불필요한 비용이 없어지고, 공공 안전과 공중 보건이 개선되고, 피할 수 있는 많은 오류가 미연에 방지될 것이다.” 2만5000원.


최형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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