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일본은행(BOJ)이 ‘엔저’에 불을 붙였다. 미국의 공격적인 긴축과 가파른 엔화 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기로 하면서 28일 엔·달러 환율이 20년 만에 달러당 130엔을 돌파(엔화 가치 하락)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환율이 2002년에 찍었던 135엔을 돌파할지로 이동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이날 이틀에 걸친 금융정책결정회의 후 단기 금리는 -0.1%, 장기 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는 0% 수준으로 유도하는 기존 정책을 유지하기로 했다. 아울러 매 영업일에 0.25%의 금리로 일본 10년물 국채를 무제한으로 매입하는 공개시장 조작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 회계연도의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개월 전의 1.1%에서 1.9%로 올려 잡았지만 내년과 2024년 물가 전망치는 종전과 같은 1.1%를 유지해 지금의 물가 상승이 일시적이라는 시각을 보였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은 기존 3.8%에서 2.9%로 낮췄고 내년 전망치는 1.1%에서 1.9%로 상향 조정했다. 2024년은 1.1%를 유지했다.
일본은행의 이 같은 결정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이날 달러당 128엔대에서 거래되던 엔·달러 환율은 장중 130.66엔까지 오르며 심리적 지지선인 130엔을 뚫었다. 이날 미일 10년물 국채 금리 차도 3년 이래 최대로 벌어졌다.
엔저가 가계의 물가 부담만 늘리는 ‘나쁜 엔저’라는 비판이 나오는 와중에도 일본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지금의 인플레이션을 ‘공급 충격’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최근 “수요가 늘어나 물가가 오르는 것이 아닌 인플레는 가계의 실질임금을 줄이고 기업 실적에 타격을 줘서 결국 경제 성장을 제약할 것이므로 중앙은행은 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금융 완화를 계속함으로써 코로나19로부터 경제 회복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구로다 총재는 “엔저가 경제 전체에 이득이라는 견해를 바꾼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변동은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며 “환율 급변동을 예의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주 웨스트팩은행의 숀 캘로 선임외환전략가는 “일본은행은 일본이 글로벌 인플레이션 흐름에서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제로 금리를 유지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다”며 “엔·달러 환율에 대한 시장의 관심은 2002년의 기록인 135엔으로 빠르게 옮겨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