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나의 해방일지, 당신에게 보내는 따스한 응원

작가

코로나 팬데믹 후 다시 돌아온 일상

지인과 만날 일 잦아지고 경조사 폭증

내성적인 사람은 감정 노동으로 다가와

한뼘 떨어진 채 응원의 눈길 보내보자





때로는 팬데믹이 끝나고 모든 것이 ‘정상화’된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점점 사람 만날 일이 잦아지고 온갖 경조사가 폭증하면, 어디론가 숨고 싶어집니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사람에게는 모든 인간관계가 감정노동이기 때문입니다. 남들 앞에서는 대체로 내향성 인간임을 숨기고 적절한 사교적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사회적인 필요성 때문에 외향적인 연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견딜 수 없는 외로움과 헛헛함에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나의 아저씨’로 폭발적인 공감을 얻은 박해영 작가의 신작 ‘나의 해방일지’를 보며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내성적인 사람은 그냥 내성적일 수 있게 편하게 내버려두면 안 되나?”라는 대사가 가슴을 찌릅니다. 행복센터는 사원들의 행복을 소모임활동 장려로 관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행복센터는 개인의 행복을 늘이기는커녕 안 그래도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더욱 철저한 관리대상으로 내몰아버리지요. 어떤 소모임에도 들지 않으리라 결심한 미정, 태훈, 상민은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지만, 독특한 ‘해방클럽’을 만들어 관리자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해방클럽, 사람을 관리하고 감독한답시고 괴롭히고 억압하는 그 모든 일상의 권력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는 소모임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들은 일단 ‘똑바로 마주보고 앉는 모임의 불편함’으로부터 해방됩니다. 그냥 셋이서 각자 창밖을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적당히 거리를 두고 이야기합니다. 사람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조직에 복종하는 사람과 저항하는 사람, 서울 사람과 지방 사람, 애인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회성 뛰어난 사람과 내성적인 사람으로 나누는 그 모든 권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그것은 일단 굳이 얼굴을 마주보지 않는 편안함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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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중독자 구씨와 염씨네 막내딸 염미정과의 로맨스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해방클럽으로 보입니다. 사랑과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모든 편견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관계. 그것은 다만 서로를 온전히 ‘추앙’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추앙이라니, 당혹스럽지요. 하지만 늘 불완전한 사랑에 시달렸던 우리, 다시 생각해봐요. 우리가 마음 깊은 곳에서 바라는 것은 어쭙잖은 연애, 늘 눈치보는 사랑이 아니라 존재를 빈틈없이 채워주는 순수한 추앙의 눈길이 아니었을까요. 다짜고짜 자신을 추앙해달라는 미정의 당혹스런 부탁에 구씨는 당황하지만, 그 또한 미정의 결핍을 알아봅니다. 한 번도 온전히 채워진 적이 없는 존재. 항상 결핍과 우울에 시달리는 우리. 나를 무작정 추앙해달라는 미정의 참담한 눈빛 속에 숨겨진 영혼의 허기를, 구씨는 이해합니다. 구씨 또한 방안을 빼곡하게 채운 초록색 소주병으로도 결코 해결하지 못한 결핍과 절망을 홀로 견디고 있었으니까요.

미정은 우리가 서로를 조건없이 추앙한다면 분명 삶이 달라질거라 믿습니다.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평범한 사랑으로는 부족한, 한 존재를 향한 무조건적 추앙. 그것은 그 사람이 언제 어디서든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느낄 수 있게 따스한 응원의 눈길을 보냄으로써 시작됩니다. 바람에 날려간 그녀의 모자를 줍기 위해 ‘100미터 11초 플랫’ 정도는 너끈히 달려야 해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도움닫기로 넓이뛰기를 하는 구씨. 그의 숨 막히는 도약의 몸짓은 그동안 너무 갑갑하고 외로웠던 ‘우리 내향인 클럽’사람들에게 상쾌한 해방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해방클럽, 우리도 시작해볼까요. 우선 제가 당신을 추앙하겠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관심이 없어도, 당신이 내 문자를 ‘읽씹’하더라도, 당신에게 뜨거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내겐 너무도 소중한 당신, 당신 곁엔 늘 나의 보이지 않는 응원의 손길이 함께함을 잊지 말아요. 당신이 가장 외롭고 쓸쓸한 순간, 아무런 계산도 눈치도 없는 내 순수한 응원의 손길이 당신의 지친 등을 토닥토닥 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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