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74년 형사사법체계 무너뜨린 '34분 폭주'…'검수완박' 꼼수입법

사보임·위장탈당·회기쪼개기 총동원

안건조정위 17분·법사위 통과 8분

두차례 본회의 의결 9분 '속전속결'

巨與 밀어붙이기에 국힘은 무기력

여야 합의 파기하며 명분 내주기도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했지만

재판관 6명 '진보'…뒤집기 힘들듯

3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발 속에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표결 통과되고 있다. / 연합뉴스3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발 속에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표결 통과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수완박’으로 불린 검찰 수사·기소권 분리 법안이 국회 문턱을 모두 넘었다. 74년간 이어져온 형사·사법제도가 바뀌기까지 걸린 시간은 34분에 불과했다. 네 차례의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여야 간 대화와 협치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한 차례 여야 합의가 있었지만 불과 사흘 만에 파기됐다.



국회는 3일 본회의를 열고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찬성 표결을 한 164인 중 163명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거나 민주당을 탈당한 의원이었다. 나머지 한 명도 경찰 출신인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었다. 앞서 검찰청법 개정안 처리 당시 찬성에 힘을 보탠 정의당은 이번에는 기권표를 던졌다. 사실상 민주당의 단독 통과인 셈이다. 국회 문턱을 넘은 형사소송법은 앞서 통과된 검찰청법과 함께 이날 오후 열린 국무회의에서 공포됐다.

민주당은 한 달 만에 검수완박 법안을 모두 통과시키기 위해 편법과 꼼수를 총동원했다. 상임위원회에서 이견이 있는 법안을 추가로 논의하는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민주당을 탈당한 양향자 의원을 법제사법위원회로 사보임시켰다. 민주당의 계획과 달리 양 의원이 법안 반대 입장을 밝히자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무소속 자리를 메운, 사실상 ‘위장 탈당’이었다.

당론 합의 과정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달 12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속도전 방식의 법안 통과에 반대 뜻을 나타낸 의원들이 상당수 있었지만 원내 지도부는 ‘만장일치’ 당론으로 채택했다. 당론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징계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충분한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의원들도 본회의에서는 ‘찬성’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회의 과정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위장 탈당’으로 수적 우위를 차지한 민주당은 안건조정위 논의를 17분 만에 끝냈고 이어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8분 만에 의결했다.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카드를 꺼내 들며 지연 작전을 시도했지만 회기를 법안 상정 당일까지로 하는 ‘회기 쪼개기’로 무력화했다.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데는 각각 6분과 3분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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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한국형 FBI’로 불리는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를 논의할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 결의안 또한 ‘속도전’으로 처리했다. 아무리 좋은 명분도 과정이 좋지 않으면 국민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우려가 민주당 내에서도 나오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의 대응도 무기력했다. 법사위 통과를 막기 위해 무리하게 위원장석을 점거하면서 국회법 위반 소지를 제공했다. 필리버스터에서도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한 방’은 없었다. 발언대에 오른 의원들은 그저 자신들에게 배정된 시간 채우기에만 급급했다. 의총 추인까지 마친 합의안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전화 한 통으로 사흘 만에 파기하면서 민주당에 법안 처리의 명분만 만들어줬다.

국민의힘은 여기에 헌법재판소에 법안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및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며 국회의 입법권을 사법부에 넘기는 모습까지 보였다. 의석수가 부족하다 보니 법안 통과 이후 헌재의 결정에 기대는 시도는 20대 국회에서도 있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제정안과 선거법 개정안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당시에도 이미 국회를 통과한 법안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보 성향의 재판관이 다수인 점도 변수다. 권한쟁의 심판 청구 인용을 이끌어내려면 과반인 재판관 5인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최종 목표인 법률 위헌을 위한 정족수는 6인 이상이다. 현재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유남석 헌재 소장을 비롯한 6명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위헌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 국회의장은 이날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이제 여야가 진정으로 국익과 국민을 위해, 민생을 위해 마음을 가다듬고 새롭게 협치의 정신을 발휘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며 “다시 신뢰받는 국회로 나아가자”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가 지난 한 달간 보인 편법과 꼼수, 그리고 무기력한 모습으로는 다시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상훈 기자·신한나 기자·주재현 기자·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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