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특급 호텔들이 아트워크(예술 작품) 컬렉션을 통해 자웅을 겨루고 있다. 단순한 장식용이 아닌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으로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호텔이 단순 숙박시설에서 결혼식·연회 등 각종 행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발전한 데 이어 이제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문화 트렌드를 선도하는 위치에 선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해소되고 호캉스(호텔+바캉스) 등 특급 호텔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문화’에 대한 집중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아트워크 컬렉션의 대표주자는 롯데호텔이 운영하는 브랜드인 시그니엘 호텔이다. 시그니엘 호텔은 서울과 부산 두 곳을 운영 중인데 수많은 유명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는 이들 호텔 자체가 하나의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다. 시그니엘 서울이 대표적이다.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에 위치하고 있는 시그니엘 서울을 먼저 찾아봤다. 시그니엘 서울 호텔은 롯데월드타워 76층에서 101층 사이에 위치한다. 모든 객실에서 서울 시내를 조망할 수 있고 특히 환상적인 야경을 자랑한다.
‘호텔 미술관’ 같은 시그니엘 서울의 대표작은 79층 메인 로비에 위치한 제니 홀저의 작품이다. 로비에 들어서면 체크인 데스크 맞은편 벽면에 발광다이오드(LED) 전광판 비슷한 것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홀저의 ‘트루 리빙(True Living)’이다.
홀저는 1990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 및 미국관을 대표한 최초의 여성 작가로 사회·인문 등의 경구를 전하는 현대 개념미술 작가다. 그는 본인의 작품에서 언어를 가장 중요한 의사전달 수단으로 사용하는데 일상 사물에서부터 LED 전광판, 건축물 등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관람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그니엘 서울에 있는 작품의 경우 가로로 LED 텍스트가 천천히 움직이며 인생의 가치와 깨달음을 담은 문구들이 제시된다. 전체 내용은 13시간 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고객들이 체크인·아웃 등 대기시간에 작품을 보다 보면 누군가 옆에서 시를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해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시그니엘 서울에서는 이외에도 15만 개의 스테인리스 태커용 핀못을 박아 화면을 구성한 유봉상 작가의 ‘LT20170330’과 투명한 크리스털로 이뤄진 박선기 작가의 ‘조합체’ 등 작품도 빼놓기 아쉬운 작품이다.
‘바다의 도시’ 부산에서 최고층 건물인 엘시티 랜드마크타워 3층에 위치한 호텔인 시그니엘 부산 로비에도 허공을 유영하고 있는 보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플라잉 보트(Flying Boat)’가 로비 한가운데 두둥실 떠 있다.
에를리치는 2001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아르헨티나관의 대표작가를 역임한 현대미술가다. ‘플라잉 보트’는 물이 아닌 허공을 유영하고 있는 보트 조각으로 실재와 환상 사이의 모호함을 부각시키며 관람객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서울과 부산에 이어 특급 호텔의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는 제주에서는 중문단지에 위치한 그랜드 조선 제주가 눈에 띈다. 그랜드 조선 호텔은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조선호텔앤리조트의 특급 호텔 브랜드다. 아트워크는 그랜드 조선 제주의 신관(힐스위트관)에 집중돼 있다.
신관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서양식 궁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터널 끝에 태양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이 보인다. 스위스 출신 현대미술가인 우고 론디노네의 ‘선 2(Sun 2)’ 작품이다. 태양이라는 이름 그대로 빨강·노랑·보라 등 따뜻하고 밝은 색상의 동심원이 봄날 제주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 호텔에 들어서는 방문객을 환영하는 모습이다.
선 2 작품 앞에서 위쪽을 바라보면 갖가지 색깔의 구(球)가 연결된 작품이 있다. 최정화 작가의 ‘연금술(Alchemy)’이라는 작품으로 5층 높이의 천장에서 아래로 길게 매달려 있다. 구 표면에 비치는 카메라를 든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도 이색적이다.
한편 아트워크의 대표적인 해외 호텔로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벨라지오 호텔이 꼽힌다.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등 세계적인 화가의 진품 작품을 대량으로 보유하면서 최고급 호텔의 이미지를 관광객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호텔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급 호텔의 핵심 요소로 예술 작품을 원하는 숙박객 및 일반 관람자들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호텔 측의 명작 보유 욕구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