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미국의 바이오 위탁생산(CMO) 공장을 인수한다. 앞서 바이오 분야를 그룹의 신성장 동력으로 선포한 가운데 바이오 신사업 진출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롯데는 미국에 있는 CMO 공장을 인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구체적인 인수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다. CMO는 연구개발(R&D)을 직접 하지 않고 다른 회사에서 개발한 바이오 의약품을 전문적으로 위탁 생산하게 된다.
앞서 롯데는 CMO 사업 진출을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출신의 이원직 상무를 영입했다. 이 상무는 롯데의 신성장2팀을 이끌고 있는데 이번 CMO 공장 인수로 바이오 산업 진출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재 브랜드 특허 확보와 롯데에서 시도 가능한 바이오 사업의 여력 등을 파악하고 있다. 이 상무 외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출범 초기 사업에 관여한 인물 일부도 신성장2팀에서 사업 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은 롯데지주가 직접 투자하고 육성해나갈 계획”이라며 바이오 분야를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공표한 바 있다. 롯데는 다음 달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바이오 USA’ 행사의 현장 참석 등록도 완료했다.
바이오 USA는 CMO, 연구개발(R&D) 신약 개발 등 전 세계 제약·바이오사가 총집합하는 국제 행사로 위탁생산 사업에 필요한 원료 수급, 사전 수주 계약 등 사업 파트너를 물색할 수 있는 자리다. 롯데는 이 행사에 ‘롯데바이오로직스’라는 업체명으로 참석한다.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업종 역시 CMO로 기재됐다. 업계에서는 롯데가 전문 연구 인력을 필요로 하는 신약 R&D 대신 CMO 분야로 진출할 것이라는 관측을 꾸준히 내놓았다.
롯데 관계자는 “바이오 산업 진출이라는 큰 틀이 정해진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을 할지 구상 중”이라며 “아직 바이오 산업과 관련해 많은 학습과 검토가 필요한 만큼 바이오 USA 참가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롯데그룹의 바이오 사업 진출은 미래 신성장 동력을 중심으로 그룹의 체질 개선을 이뤄내겠다는 신동빈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행보다. 주력 사업이었던 유통 부문에서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부진을 면치 못하자 바이오·헬스케어·모빌리티 등 신사업으로 눈을 돌려 사업 구조를 개편하려는 시도다.
신 회장은 지난해 상반기 사장단회의(VCM)에서 “각자의 업에서 1위를 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는 과감히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고 올해 VCM에서는 “과거처럼 매출과 이익이 개선됐다고 만족하지 말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신 회장의 과감한 투자 의지로 롯데는 지난해만 100억 원 이상의 인수합병(M&A)과 지분 투자 12건을 진행했다. 누적 금액만 1조 원이 넘는다.
롯데그룹이 신사업으로 공언한 세 가지 분야 중 헬스케어와 모빌리티에 대한 투자는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달 자본금 700억 원을 출자해 자회사 롯데헬스케어를 설립했으며 차량 공유 업체 쏘카에 1832억 원을 들여 지분 13.9%를 취득하기도 했다.
바이오 사업은 초반 역량 강화를 위해 대규모 M&A와 투자가 불가피한 만큼 롯데는 미국 의약품 위탁 생산(CMO) 공장 인수를 통해 산업 진출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전 세계 공급망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그룹으로서는 경쟁력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만큼 계열사별 M&A를 포함해 과감한 투자 활동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 기준 유동자산이 4조 7724억 원을 넘으며 현금성 자산만 1조 3945억 원에 달한다는 점을 볼 때 빅딜 여력도 충분하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