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탈세계화·프렌드쇼어링에…美 포드, 자국 중심 공급라인 구축

[국제질서 룰이 바뀌었다]< 하 > 블록화된 경제안보

우크라전쟁發 신냉전 격화…美 등 우방국 중심 공급망 재편

멕시코 리튬 국유화·印尼 니켈 수출 금지 등 자원도 무기화

인플레 속 교역도 둔화…WTO 올 증가율 4.7→3%로 하향





미중 무역 전쟁과 코로나19 팬데믹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겹치며 냉전 종식 이후 30여년간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으로 자리를 잡아 온 세계화·분업화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원자재와 식량·반도체 등의 공급망 경색과 물류대란, 신냉전의 대립 구도 속에 전 세계가 촘촘하게 연결됐던 기존의 경제 질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전쟁을 계기로 순식간에 에너지와 식량 공급, 금융 시스템의 단절을 경험한 세계 각국은 이제 더 높은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안정적으로 제품을 생산·운송할 수 있도록 확실한 우방국들로 공급망을 재편하기 시작했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기술이나 원자재를 비우방국가에 의존할 때 뒤따를 수 있는 위험성을 자각하면서부터다. 이에 전 세계에는 미국 등 서방과 그에 맞서는 중국·러시아를 두 축으로 삼는 경제의 ‘블록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세계화가 종말을 고하고 탈세계화(deglobalization)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관측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최고경영자(CEO)는 3월 주주서한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은 냉전 이후 유지되던 세계 질서를 뒤엎었다”며 “30년간 이어진 세계화가 끝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세계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세계화의 종말을 단언하지는 않으면서도 “확실히 다른 세상이 올 것”이라며 “세계화가 둔화할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그동안 1989년 냉전 종식과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가속화한 세계화의 과실을 누려왔다. 각국 기업들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동남아 등지로 생산 기지를 옮기고 세계 각지에서 원자재를 조달해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과 그에 이은 서방의 경제제재는 순식간에 러시아를 글로벌 경제 시스템에서 단절시켰고 이는 에너지·식량 가격 폭등과 공급망 위기의 심화로 이어졌다. 그 결과 이제 기업들은 국내 혹은 동맹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 제품 가격이 오르더라도 보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쪽으로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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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공급망 재편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등은 “희토류·5세대(5G)·반도체 등 국가 안보에 핵심적인 품목의 공급망과 관련해 미국은 국내에서 조달하거나 오로지 완전히 친근한 동맹국과만 제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나 중국 등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와는 핵심 기술 공유나 투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미국 정부는 한국·일본·대만 등으로 구성된 ‘칩4(Chip 4) 동맹’ 결성을 추진하며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첨단 반도체 기술로부터 중국을 차단하려 하고 있다. 기업 역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우호국 중심으로 공급망 재편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 포드자동차는 미국과 기타 우호적인 국가들을 중심으로 원자재 확보부터 최종 배터리 생산까지의 공정 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경제안보를 의식해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은 자원 시장에서도 심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고 러시아가 천연가스 자원을 무기화해 서방 제재에 대항하는 모습에 일부 자원 부국들은 주요 자원이나 식량의 해외 수출을 제한하는 등 자원 무기화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멕시코가 전기차 보급 확대로 수요가 급증한 리튬의 국유화에 나선 데 이어 아르헨티나·볼리비아·칠레 등 중남미의 주요 리튬 생산국들과 함께 리튬 연합체 구성을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는 2020년부터 니켈 원광 수출을 금지하고 알루미늄의 원료인 보크사이트와 구리 수출을 각각 올해와 내년 차례로 금지할 계획이며 식량 자원인 팜유 수출도 중단한 상태다.

이는 세계경제에 추세적인 고물가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30년간 기업과 소비자는 세계화로 물자가 풍부한 시대에 살았고 이는 제품 가격 인하로 이어졌다”며 “하지만 세계화 흐름이 흔들리며 물자의 가격이 싸고 풍부한 시대도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고 경고했다.

생산과 무역·자원에 뒤얽힌 거대한 경제안보 지형의 변화는 수출 의존형 한국 경제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당장 탈세계화로 교역이 둔화하는 것이 악재다. 최근 WTO는 전쟁으로 인해 올해 세계 교역 증가율 전망치를 종전의 4.7%에서 3.0%로 대폭 내려 잡았다. 자원 무기화가 가속화하면서 에너지·원자재를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입장에서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도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동맹국들만으로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과도 경제 연관성이 높은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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