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 매체 다이아몬드지 3월 호는 “오랫동안 한국 경제가 우세했지만 곧 대만이 역전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 원인 중 하나로 “한국 경제가 벽에 부딪혀 있는 것과 달리 대만은 미중 갈등에 따른 세계적인 공급망(서플라이 체인) 변화가 경제 성장에 순풍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만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발 빠르게 대처하며 경제 성과를 일구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최근 무역협회도 ‘글로벌 공급망의 뉴노멀과 우리의 대응’이라는 보고서에서 아시아 지역 내 공급망 중심이 대만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오랫동안 중국이 아시아의 거점 국가였지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와 가치 동맹이 중심이 된 공급망 재편 속에 대만이 중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만은 최대 교역 국가인 중국과 미국의 갈등 상황에서 미국과의 강력한 결탁을 택했다. ‘하나의 중국’ 이슈를 놓고 지난 수년 동안 불거져온 지정학적 불안감을 상쇄하기 위해서다. 안보를 지렛대 삼은 미국과의 관계 강화는 다시 경제협력으로 이어져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 중심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대만의 위상을 끌어올려 놓았다.
최근 미 무역대표부(USTR)와 대만 경제무역협상판공실이 화상으로 열고 있는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회의는 미중 갈등을 계기로 달라진 대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자유무역협정(FTA) 전 단계이자 미국과 대만이 5년 만에 벌이는 무역 협상인 TIFA는 그만큼 미국에 대만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같은 미국과의 강력한 관계와 높은 기술력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서방국가들의 움직임과 맞물려 대만에 새로운 기회의 문을 열어놓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들이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구축에 관심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대만이 공급망 다양화를 모색하는 국가들로 기업 관계자들이나 연구자 등을 파견해 관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는 TSMC를 중심으로 반도체 인프라 투자에 속도를 내며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일본과의 경제협력 관계도 최근 부쩍 강화됐다. TSMC는 최근 186억 엔을 투자해 일본 쓰쿠바시에 반도체 후공정 분야 연구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생산에 강점을 지닌 자신들이 설계와 소재·장비 분야 강국인 미국·일본과 함께 글로벌 공급망을 이끌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수년 간 산업구조를 재편하며 기술 경쟁력을 키워온 대만에 반도체 품귀 현상이 심해지자 미국과 독일·일본 등이 증산 요구를 하고 있을 정도로 대만은 대체 불가능한 지위에 올라섰다.
미국과 대만의 밀착 관계를 못마땅해하는 중국도 대만의 기술력 앞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화웨이 등은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대만 업체들에 반도체 등 핵심 부품을 주문했다. 지난해에는 반도체 수급이 몰리면서 대만에서 홍콩을 포함한 대중 수출이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